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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스타워즈’가 독이 된 불운의 다스 베이더

등록 2023-06-10 08:00수정 2023-09-01 09:34

[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
헤이든 크리스텐슨

10대 시절 ‘비범한 연기’ 스타덤
아나킨 역 발탁, ‘발 연기’ 혹평
연기 중단…‘가면증후군’ 고백
‘스타워즈 드라마’로 다시 활동
헤이든 크리스텐슨이 지난해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새턴상(공상과학 작품에 주는 상) 시상식에서 스트리밍 시리즈 최우수 게스트 연기상을 받고 <스타워즈> 캐릭터 다스 베이더 옆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헤이든 크리스텐슨이 지난해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새턴상(공상과학 작품에 주는 상) 시상식에서 스트리밍 시리즈 최우수 게스트 연기상을 받고 <스타워즈> 캐릭터 다스 베이더 옆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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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헤이든 크리스텐슨이 제2의 브래드 핏이 될 것이라 믿었다. 적어도 제2의 이선 호크(에단 호크) 정도는 되리라 믿었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이 대체 누구냐고? 사실 이 북유럽식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예외라면 <스타워즈>의 오랜 팬 정도일 것이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2000년대 개봉한 <스타워즈> 프리퀄 시리즈에서 다스 베이더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다. 이제서야 당신은 이 출중하게 잘생긴 배우의 얼굴을 어렴풋이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그런 이름을 가진 배우가 있었지, 하고 말이다. 말하자면 이 글은 완전히 잊힌 과거의 스타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은 반짝스타로 넘친다. 젊은 시절에 급히 얻은 인기를 오래 유지하는 배우는 사실 몇 없다. 톰 크루즈, 브래드 핏,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은 드문 사례다. 그들이 위대한 배우가 된 이유는 끝없이 경력을 잘 관리하며 수십년을 버텼기 때문이다. 브래드 핏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가 할리우드 역사에 남을 대배우가 되리라 생각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신은 일찌감치 그렇게 생각했다고? 거짓말. 그가 금발 머리를 휘날리던 <가을의 전설>이 개봉한 1994년을 다시 떠올려 보시라.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그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한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금방 스쳐 지나갈 수많은 미남 중 하나라고 여겼다.

잘생긴 배우의 ‘인생 배역’

다만 모든 오래 살아남은 배우들에게는 ‘일생일대의 배역’이 있다. 브래드 핏에게는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1995)과 <파이트 클럽>(1999)이 있었다. 그 역을 맡지 않았다면 브래드 핏의 경력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톰 크루즈에게는 <탑건>(1986)이 있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에게는 <타이타닉>(1997)이 있었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에게도 그런 배역이 있었다. <스타워즈> 프리퀄 시리즈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추억으로 남아 있던 <스타워즈>의 프리퀄을 만든다는 소식이 들리자 할리우드 모든 젊은 배우들이 뛰어들었다. 당대 가장 촉망받는 젊은 스타들이 오디션을 봤다는 소문이 돌았다. 막상 배역을 맡은 배우는 헤이든 크리스텐슨이라는 낯선 이름이었다. 스타 탄생이었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1981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13살부터 드라마에 출연한 그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데뷔작 <처녀 자살 소동>(1999)에 출연해 할리우드의 눈길을 받았다. 어윈 윙클러 감독의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2001)에서 그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아버지와 조금씩 화해하는 10대 아들 역을 맡았다. 케빈 클라인,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같은 훌륭한 배우들 사이에서 그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당신이 당시 그 영화를 봤다면 덴마크 혈통 북유럽 특유의 차가운 눈동자로 화면을 쳐다보는 헤이든 크리스텐슨의 아름다움에 반한 뒤, 어린 나이로서는 비범할 정도의 연기에 빠져버렸을 것이 틀림없다. 그는 이 영화로 이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다시 말하지만, 스타 탄생이었다.

모두가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2002)을 기대했다. 다스 베이더라는 악당으로 거듭나는 아나킨 스카이워커 역은 아무나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아니었다. 노예 출신 아나킨은 제다이로 훌륭하게 성장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불안 등 복합적이고 분열증적인 마음의 진앙을 겪으며 악의 세력에 영혼을 바치고 마는 남자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이라 할 법한 캐릭터다. 바로 전해 골든글로브 후보에 오른 촉망받는 젊은 배우에게는 경력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기대는 영화가 공개되자 무너져 내렸다.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에서 그의 연기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발 연기’였다.

&lt;스타워즈: 클론의 습격&gt;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내털리 포트먼. 크리스텐슨은 이 영화에서 ’발 연기’를 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헤이든 크리스텐슨과 내털리 포트먼. 크리스텐슨은 이 영화에서 ’발 연기’를 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한국인이 봐도 어색하고 뻣뻣한

한국인이 영어 연기를 보며 발 연기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만약 한국인이 발 연기라고 느낀다면 그건 정말이지 할리우드 역사에 남을 발 연기라는 의미다. 내가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 이전에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발 연기라고 느낀 건 두번이었다. <보디가드>(1992)에서의 휘트니 휴스턴과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992)에서의 키아누 리브스였다. 휘트니 휴스턴이야 팝스타의 첫 연기 진출이라는 변호라도 할 수 있었다. 키아누 리브스는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관객마저도 ‘아, 이것이 발 연기라는 것이로구나’라며 한탄을 뱉을 만한 연기를 찬란하게 스크린에 새겨넣었다. 키아누 리브스는 아직도 발 연기를 한다. 다만 그는 발 연기를 오히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스타로서의 아우라를 창조해 냈다. 연출자들은 그의 뻣뻣함을 적극적으로 캐릭터에 반영했고, 그 결과가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매트릭스>와 <존 윅> 시리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하겠지만 스타가 꼭 연기력만으로 만들어지던가.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죽었다 깨어나도 고칠 생각이 없는 오스트리아 발음으로도 영원불멸의 스타가 되지 않았던가 말이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다르다. 그는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아니다.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 이후 출연한 <섀터드 글래스>(2003)에서 그는 이른 나이에 스타 기자가 됐으나 모든 기사가 가짜로 지어낸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추락한 실존 인물 스티븐 글래스를 연기했다. 비범한 연기였다. 그러나 2005년 개봉한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 속편 <스타워즈: 시스의 복수>에서 그의 연기는 여전히 어색하고 뻣뻣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그를 변호했다. 문제는 연출자인 조지 루커스라고들 했다. 대사가 워낙 좋지 않은 탓에 어떤 명배우를 데려다 놓아도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들 했다. 그런 변호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람들은 결과만을 기억한다. <스타워즈> 프리퀄에서의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연출의 탓이든 대사의 탓이든 어쨌든 발 연기를 했다. 그 사실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타워즈> 프리퀄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기대를 품었다. 그가 더그 라이먼 감독의 에스에프 블록버스터 <점퍼>(2008)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일처럼 기뻤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점퍼>가 지나치게 하향 평가받은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점퍼>가 결국 헤이든 크리스텐슨의 꺼져가던 경력에 다시 불을 붙이는 데는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이후 몇몇 작은 영화에 출연한 뒤 잊혔다. 그는 2015년 인터뷰에서 <스타워즈> 출연이 그에게 ‘가면 증후군’을 안겼다고 고백했다. 가면 증후군은 갑작스러운 성공을 거둔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는 심리적 장애다. “<스타워즈>가 저에게 더 많은 기회와 화려한 경력을 안겨주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만, 저에게는 너무 벅찬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도 한때는 잘나갔지’라는 생각만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의 선택은 ‘일단 멈춤’

사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헤이든 크리스텐슨을 끌어온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한때 지독한 가면 증후군에 시달렸다. 매체 편집장을 맡았던 5년 내내 가면 증후군을 겪었다.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갑자기 높은 자리를 맡게 된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스스로의 성공에 도취되거나, 혹은 스스로의 성공에 압도된다. 도취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압도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가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가’를 계속 고민하는 것은 중책을 맡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그 고민이 끝없이 계속되는 순간 마음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바닥으로 떨어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필요한 건 잠시 멈추는 것이다. 도취된 사람들은 멈추지 않는다. 압도된 사람들이 멈추는 건 영 부당한 일이다. 어쩌겠는가. 한국 정치인들은 대부분 전자인데, 우리 모두가 한국 정치인들처럼 살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멈추었다. 할리우드를 떠났다. 자신이 소유한 농장에서 거주하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포스’(<스타워즈> 세계관을 지배하는 힘 또는 기운)가 다시 그를 불러들였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2022년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스타워즈> 드라마 <오비완 케노비>에서 다시 한번 다스 베이더 역을 맡았다. 그를 잠시 스타로 만들었다 바닥으로 내친 시리즈에서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팬들의 가슴을 울리는 연기를 해냈다. 2023년 공개될 새로운 <스타워즈> 드라마 <아소카>에서도 그는 다스 베이더 역으로 돌아온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흘러간 스타가 지나간 영광의 가면을 뒤집어쓴 역을 반복하는 걸 보는 건 좀 슬픈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과거의 유령을 붙잡고라도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삶은 생각보다 길고,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헤이든 크리스텐슨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실패를 경험해본 사람들에게 포스가 있으라.

문화 칼럼니스트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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