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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내가 아는 풍경 실제처럼 그린 애니메이션 감동도 크죠”

등록 2023-06-13 18:15수정 2023-06-14 02:34

[짬] ‘그 여름’ 연출 한지원 감독

한지원 감독. 판시네마 제공
한지원 감독. 판시네마 제공

“지브리나 픽사 작품이 좋아서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기 위해 학교에 온 친구들이 졸업할 때는 영유아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하거나, 웹툰작가나 게임 콘셉트디자이너가 됩니다. 새로운 오리지널 장편을 작업하고 있는데 경험 많은 인력을 구하는 게 아주 어려워요. 경력있는 인재 풀이 생태계를 이루는 애니메이션 선진국과는 매우 다른 점이에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등 성인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올 봄 한국 극장가를 강타했지만 여전히 유아동용 제작에 머물고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계에 성인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 오랜만에 당도했다. 최은영 소설가가 쓴 동명의 작품을 영상으로 옮겨 7일 개봉한 한지원 감독의 <그 여름>이다. 국내 최대 애니메이션 전문 오티티 플랫폼 ‘라프텔’과 함께 기획하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러브, 데쓰+로봇>에 참여했던 레드독컬처하우스가 제작했다. 한국예술종합합교 영상원 애니메이션학과를 졸업한 한 감독은 꾸준히 단편작업을 하며 선댄스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그 여름>은 삼십대가 된 ‘이경’이 고교 시절 ‘수이’와 사랑에 빠졌던 여름의 기억에 대해 떠올리는 이야기다. 영화는 고교생이던 이경과 수이의 풋풋한 사랑과 나이들어가며 삶에 지치는 속도처럼 사랑이 마모되는 과정을 서정적인 그림체로 담았다. 극장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퀴어로맨스이면서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성장담이기도 하다. 서면 인터뷰로 <한겨레>와 만난 한 감독은 “기존 애니메이션의 문법을 벗어나 섬세한 이야기의 결을 살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원작이 가진 투명하고 날카로운, 그렇기에 더 아름다운 정서를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 2000년대 초반이라는 원작의 시대적 배경을 함께 보낸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배경 미술면에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애니메이션 &lt;그 여름&gt;. 판시네마 제공
애니메이션 <그 여름>. 판시네마 제공

애니메이션 &lt;그 여름&gt;. 판시네마 제공
애니메이션 <그 여름>. 판시네마 제공

그의 말처럼 영화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대충’ 처리하곤 했던 공간 배경의 디테일이 살아있다.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일대나 마포역 주변 등의 거리가 실사영화처럼 구체적으로 묘사됐다. 한 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장소를 답사 다니며 동선과 미술 설정 등에 반영했다. 그는 국내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시도가 많지 않았던 이유가 “연출적으로 리얼함이 중요한 작품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실사)영화와 차별화하는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강점이 주로 판타지, 아동물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많기 때문인 거 같아요. 그와 반대로 관객들은 내가 알던 그 풍경이 리얼하게 그림으로 그려졌을 때 엄청난 감동을 받아요. 그런 부분을 어필하고 싶었어요. 시장에서 생각하는 ‘애니메이션적’이라는 것이 정말 ‘애니메이션적’인 것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요.”

최은영 소설가 원작 애니메이션
공간 배경 디테일 제대로 살려
서울 거리 마치 실사영화처럼
“성인 관객 애니, 지금 중요한 시기
애정과 인내로 격려해줬으면”

선댄스 영화제 노미네이트 경력

한 감독처럼 배경화면에서 실제 풍경을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너의 이름은.>은 일본 관객 뿐 아니라 한국 팬들에게까지 배경화면 동네로 ‘성지순례’ 여행을 떠나 인증샷 남기기 바람을 일으켰다. <그 여름>은 사실적 배경화면 뿐 아니라 서정적인 감성이 신카이 마코토를 떠올리기도 하는데 한 감독은 그런 이야기를 듣는게 “부담스러워서 가급적 (신카이 감독) 작품을 덜 보려고 노력하는 감독”이라고 했다. 그는 “연출 스타일이나 정서적 결은 많이 다르지만 애니메이션 안에서 실사영화적 색채를 구현하고 싶어하는 점, 리얼한 풍경을 묘사하려는 점 등은 분명 닮았다“면서 “연출적인 결은 오히려 지브리스튜디오의 <바다가 들린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답했다. “극의 구조라는 열차에 관객을 태우기 보다는 숲을 산책하듯 캐릭터의 마음에 젖어들게 하는 느낌을 닮고 싶었습니다.”

<그 여름>은 선우정아, 김뜻돌, 정우 등 실력 있는 여성 뮤지션들의 음악 참여도 눈길을 끈다. “선우정아님의 ‘도망가자’는 정말 그 장면에 너무 찰떡이어서 꼭 사용하고 싶었어요. 김뜻돌님의 ‘아참’ 은 ‘네가 좋아하는 그 사람은 레즈비언이고, 페미니스트야. 넌 그녀와 잘 될 수 없어’라는 당차고 위트있는 가사가 좋아요. 엔딩곡을 불러준 정우님은 제 연출의 결과 잘 어울리는 목소리와 가사를 가지고 있어서 세 가수의 음악이 나오는 장면을 볼 때마다 무척 만족스러워요.”

그는 “중장년층 성인 관객을 위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는 창작자들이 인력과 재정 부족에 허덕이고 있지만 오티티 출현 이후 상업적 영역에서 창작을 이어가려는 노력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나 <스즈메의 문단속>같은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도 이단적인 존재라고 들었어요. 산업적 논리로 키운 작품이 아니라 예술가의 고집이 이뤄낸 성과라는 거죠. 산업을 떠받치는 작품들 사이에 오리지널한 작품이 필요하고 큰 성취의 시작은 이런 작품일 수 있다는 애정과 인내심을 가지고 한국 애니메이션을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감독은 관객들이 <그 여름>을 보면서 “20대를 함께 보냈던 먼 옛날의 누군가를, 내 옆의 누군가를 떠올리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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