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우리는 모두 돼지
스님인 사촌 형이 있다. 방학이면 며칠을 고모 댁에서 보내곤 했는데, 형을 졸졸 따라다녔다. 만화방에서 쫀득이 먹으면서 여러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문방구 앞에서 게임기에 붙어 앉아 한참을 몰두하기도 했다. 집에선 허락되지 않는, 작은 일탈을 하면서 짜릿함을 느꼈다. 일탈을 부추기고 앞장섰던 사람이 지금은 스님이 되었다. 대학교 때 불교 동아리를 하며 준비했고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출가했다. 먼 곳의 절에서 묵언 수행을 오래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만나지는 못했다.
뜻밖에 스님을 유튜브에서 만났다. 절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하는 법문을 찍어 올려놓은 영상이 여럿 있다. 나를 게임과 만화의 세계로 안내했던 그의 장난기 어린 표정은 여전했고 청중들에게 던지는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 형은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정진하는 삶이 얼마나 즐거운지 이야기했다. 그의 천진한 호기심은 삶의 근원에 대한 질문으로 바뀌어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부를 쉽게 풀어 대중들과 나눈다.
한자로 쓰인 불경은 어렵고 한글로 풀어 써도 다가가기 어렵다. 더구나 그 말이 단순한 한자도 아니고 범어에서 유래한 것들도 있어서 해석이 만만치 않다. 의미를 모르더라도 경전을 꾸준히 읽고 외우면 부처가 된다는 말은 이런 어려움을 넘으려는 시도이리라. 그래도 뜻을 알면 더 좋을 텐데. 어려운 것을 풀어 널리 사람들에게 알리는 매개자가 중요하다.
‘부처와 돼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시리즈는 스님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노력을 만화로 하고 있다. 첫 권, ‘우리는 모두 돼지’는 이런 질문들로 시작을 한다. 우리는 왜 고민하는 걸까? 사랑을 하면 왜 괴로울 때가 있을까? 사랑받지 못하면 왜 괴로울까? 인정받지 못하면 왜 괴로울까? 슬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왜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걸까? 연인이 없으면 안 되나? 왜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걸까? 왜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 걸까? 어떤 것이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일까? 오른손과 왼손, 어느 쪽이 위대할까?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부처님, 부처님, 어떡하면 좋을까요?
마음을 운전하는 법, 마음의 근육을 부드럽게 만들고 고민과 사귀는 법부터 설명한다. 모든 고민의 원인을 밖에서 찾기보다는 스스로를 찾는 과정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네컷 만화에 담아 재치 있게 보여준다. 구부러진 거울에 비추면 굽어 보인다. 너무 큰 것을 가까이서 만지거나 보면 전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우리는 바깥을 보지만 결국은 우리 마음에 비친 것밖에 볼 수 없다. 자신을 찾고 자신이 마음을 운전할 수 있다면 인생의 고민 중 많은 부분을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려운 말 쓰지 않고 깊은 뜻을 전한다.
사촌 형은 어떤 진리를 엿보았을까? 어떤 노력과 확신이 그가 주변에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도록 만들었을까? 궁금하고 부럽다. 그가 노력한 세월을 나는 허송한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영상 편지를 쓴다면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과학 잡지를 만들고 있어. 과학도 진리를 밝히려 애쓰지만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이 시점에서 최선일 뿐이지. 그리고 그것이 위로나 구원을 주진 못할 거야. 하지만 나도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과학의 내용을 쉽게 풀어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어. 어쩌면 나도 형이 열어준 호기심의 길을 따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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