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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기네스 펠트로, 샤론 스톤도 “여자로 살기 쉽지 않아요”

등록 2006-04-12 21:54수정 2006-04-13 21:29

팝콘&콜라
“여자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일이라는 게 너무 뻔한 것들이다.” “직업과 엄마 역할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이 두가지는 일하는 여성,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여성들에게서 가장 자주 터져나오는 불만과 힘겨움의 토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한다면, 좀 더 보수가 많은 일을 한다면 지금의 근심 걱정도 사라질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이 말은 할리우드 스타 여배우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꺼내놓은 이야기다. 지난해 서울여성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고 21일 개봉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펄프 픽션> <나인 야드> 등 할리우드와 독립영화를 넘나들며 수십편의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 로잔나 아퀘트가 만들었다. 촬영 나갈 때 가지 말라며 떼를 쓰는 여섯살 아이를 둔 엄마이자 20년 넘게 험난한 할리우드 쇼비즈니스계에서 살아남은 중견 여배우의 고민이 아케트로 하여금 카메라를 들게 했다.

기네스 펠트로, 샤론 스톤, 제인 폰다까지 이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들은 대저택을 소유하고 늘 사람들의 경탄과 부러움을 받는 직업적 삶을 살아왔지만 그들의 고민은 보통의 일하는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40대의 다이앤 레인은 “모성애와 일 사이에서 내 삶과 결혼을 조화시키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30대에 들어선 기네스 펠트로도 20대 때보다 할 수 있는 역할이 현실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걸 절감한다. 한 테이블에 모인 여배우들은 직장여성들이 남자 상사의 ‘뒷담화’를 하는 것처럼 가부장적인 남자 제작자를 욕하기도 하고, 우피 골드버그는 샐러리맨들의 넋두리처럼 “오래 버티는 게 남는 장사야”라고 자조한다.

남편 때문에 아이 때문에 욕심나는 작품의 출연을 포기하고, 톱클래스에서 살짝만 벗어나도 남자 주인공의 여자친구나 아내 같은 이른바 ‘밑반찬’ 역할에 만족해야 하며 마흔이 넘어도 계속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건 남편과 아이 때문에 일을 포기해야 하거나 주요업무에서 밀려나거나 구조조정의 위기를 가장 먼저 느껴야 하는 한국의 30대 직장 여성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물론 경제적으로 윤택한 이들의 고민이 당장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거나 터무니없는 근무조건에도 불구하고 생계 전선에 나서는 여성들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자신이 여자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사는 한 일의 성취감과 가정생활의 조화는 모든 여성이 비껴갈 수 없는 고민거리임을 이 다큐멘터리는 새삼 절감하게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에도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여배우의 인간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한국의 30대 톱 여배우 가운데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결혼과 육아는 선택의 문제지만 30대 여성의 활약이 전문직에서 스크린으로도 확장되고 있는데 이런 조건의 스타배우가 하나도 없다는 건 선택이 아니라 조건의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국에서 여성으로, 여배우로 산다는 건 더 고된 일인 것 같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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