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노동자에게서 동정의 시선을 거두라
인권영화〈세번째 시선〉중 ‘잠수왕 무하마드’ 정윤철 감독
“〈말아톤〉 준비 하면서 이 단편(〈잠수왕 무하마드〉)의 시나리오를 보고, 〈말아톤〉을 연출하는 데에도 영감을 얻었다. 이 시나리오엔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랐다. 타자를 동정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우리가 보지 못했던 다른 것이 있다는 관점.”
〈말아톤〉의 스타 감독 정윤철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하는 인권영화 프로젝트 3편 〈세번째 시선〉의 5개 단편 중 하나인 〈잠수왕 무하마드〉를 연출해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4월27일~5월5일)에서 첫 선을 보였다. 〈잠수왕…〉은 정 감독의 말마따나 타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우선 눈에 띈다. 이런 얘기다.
타이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무하마드는 공해물질이 가득 날리는 공장에서 일한다. 회사에선 마스크를 쓰라고 작업장 곳곳에 푯말을 붙여놓고, 간부가 돌아다니면서 마스크 쓰라고 외친다. 그런데도 무하마드는 마스크를 안 쓴다. 무하마드 역시 외국인 노동자 숙소에, 불법 체류자 단속이 나올 때면 도망을 가야 한다. 공장에서도 단속이 나오면 간부가 목욕탕에나 다녀오라면서 “대신 오늘 일당은 깐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공장의 공해물질, 여차하면 도망가야 하는 처지 등에도 불구하고 무하마드는 항상 웃는다. 공장 간부들은 말한다. “쟤 바보 아냐?”
무하마드가 단속을 피해 간 목욕탕의 텔레비전 화면에 타이의 한 바닷가 시골 마을을 비추는 프로그램이 나온다. 넌지시 힌트가 던져진다. 15분짜리 짧은 영화가 끝날 즈음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그랬구나!” 하고 알게 된다. 무하마드는 남들이 갖지 못한 어떤 육체적 능력에 더해 빼어난 상상력까지 갖추고 있었다는 걸.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든, 장애인이든 ‘타자’를 대할 때 나쁘면 ‘비하’, 좋으면 ‘동정’이기 쉽다. 이 단편에는, 이런 이분법을 바탕에서부터 뒤흔드는 통쾌한 힘이 있다. 다름과 같음을 살필 때, 좀더 세심하고 민주적일 것을 촉구한다.
“동명의 시나리오는 영상원 학생 이택경이 쓴 것이다. 〈말아톤〉 연출 전에 보고 무척 좋았다. 〈세번째 시선〉 제작진으로부터 연출 제안을 받고서 이 시나리오를 300만원 판권료 주고 샀다. 원 시나리오를 따르되 판타지적인 요소를 좀더 강화해 연출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현실을 하루빨리 개선하고자 하는 이들이 보기에 〈잠수왕…〉은 너무 우회적일지도 모른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워낙 많이 다뤄져서 다른 방법을 택하고 싶기도 했고, 또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우회적일지라도 마음 속 깊이 오래 남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장편 데뷔 전에 찍은 단편 〈동면〉도 구제금융 직후의 상황을 에스에프로 우화적으로 다뤘다.” 오는 6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정 감독의 두번째 장편은 가족을 다룬 영화인데, 이것도 시선이 남달라 보인다. “덤덤한 가족 이야기다. 가족 구성원끼리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그러면 자꾸 싸운다. 그냥 인정해라. 외국에 ‘쿨함’이 있다면 한국엔 ‘덤덤함’이 있다. 그런 내용이다.” 김현필 감독의 〈소녀가 사라졌다〉, 이미연 감독의 〈당신과 나 사이〉, 노동석 감독의 〈험난한 인생〉, 김곡·김선 감독의 〈Boom! Boom! Boom!〉, 홍기선 감독의 〈나, 어떡해〉 등 5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세번째 시선〉은 곧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전주/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백인백색’ 향수 선사 10년 공든 데뷔작 ‘아름다운 천연’ 일본 감독 쓰보카와 다쿠시
일본 신인감독 쓰보카와 다쿠시(34)의 〈아름다운 천연〉은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인 인디비전에 초청됐다. 이 영화가 그랑프리와 관객상을 받았던 지난해 이탈리아 토리노국제영화제 당시 달고 있던 부제는 ‘어제의 구름’.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 사라져가는 것들에 관한 영화다. 또 어제 떠 있던 구름을 떠올릴 때 그렇듯, 저마다 어렴풋하고 짠한 느낌을 받지만 이렇다 저렇다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든 영화이기도 하다. 제작기간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10년. 95분짜리 데뷔작 한 편을 만들기 위해 10년을 쏟아부은 고집스런 신인감독을 전주에서 만났다.
“25년 동안 폐쇄됐던 극장을 지나쳤어요. 폐쇄된 극장에 대한 향수, 그를 통해 떠올릴 수 있는 다른 많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영화연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로 무턱대고 촬영을 시작했지요.”
감독이 의도했던 대로 ‘향수’는 곳곳에서 느껴지고 떠오른다. 영화 속 영화로 등장하는 1930년대 무성영화도, 흑백과 컬러를 불규칙하게 오가는 화면도, 무성영화 배달원이었던 할아버지의 죽음도 모두 관객들을 향수에 젖게 한다. 하지만 쓰보카와 감독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싶었지만 어떤 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가는 전적으로 관객 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렸다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렸다는 관객도 있고, 같은 장면에 대해서도 관객마다 느낌과 해석이 전부 다르다”며 “100명의 관객들에게 100가지 답이 있는 영화가 되기를 원했다”는 의도를 설명했다.
친절하게 설명하고, 답을 제시해주는 영화들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쓰보카와 감독의 영화는 불친절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1천 살 벚나무가 만개한 장면을 찍기 위해 3년을 기다리고, 후시녹음만 1년을 했다”는 지난한 10년 세월을 듣다 보면, 쓰보카와 감독이 지나치리만큼 세심하게 자신의 영화와 관객들을 배려했다는 점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아름다운 천연〉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1930년대 무성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무성영화 속에서는 바이올린 연주자와 꽃파는 어린 소녀의 슬픈 사랑이 진행되고, 현재 시점에서는 소년 시절 그 무성영화 필름을 배달하다 슬픈 결말 부분을 땅에 파묻어버렸던 할아버지와 그의 며느리, 손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천연〉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아직 미개봉 상태지만, 쓰보카와 감독은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영화제를 돌며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현실을 하루빨리 개선하고자 하는 이들이 보기에 〈잠수왕…〉은 너무 우회적일지도 모른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워낙 많이 다뤄져서 다른 방법을 택하고 싶기도 했고, 또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우회적일지라도 마음 속 깊이 오래 남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장편 데뷔 전에 찍은 단편 〈동면〉도 구제금융 직후의 상황을 에스에프로 우화적으로 다뤘다.” 오는 6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정 감독의 두번째 장편은 가족을 다룬 영화인데, 이것도 시선이 남달라 보인다. “덤덤한 가족 이야기다. 가족 구성원끼리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그러면 자꾸 싸운다. 그냥 인정해라. 외국에 ‘쿨함’이 있다면 한국엔 ‘덤덤함’이 있다. 그런 내용이다.” 김현필 감독의 〈소녀가 사라졌다〉, 이미연 감독의 〈당신과 나 사이〉, 노동석 감독의 〈험난한 인생〉, 김곡·김선 감독의 〈Boom! Boom! Boom!〉, 홍기선 감독의 〈나, 어떡해〉 등 5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세번째 시선〉은 곧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전주/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백인백색’ 향수 선사 10년 공든 데뷔작 ‘아름다운 천연’ 일본 감독 쓰보카와 다쿠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