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죽음의 현장을 피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운명이 찾아와 반드시 죽일 것이다.’
지난 2000년 시작된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피해 갈 수 없는 공식이다. 비행기와 자동차가 롤러코스터 참사로 바뀌었을 뿐, 시리즈 3편인 〈파이널 데스티네이션〉(감독 제임스 윙) 역시 같은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웬디(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는 졸업 파티가 열리고 있는 놀이동산에서 ‘죽음의 징후’를 목격한다. 롤러코스터에 올라타지만 환영처럼 사고 장면을 보고 발작을 일으키며 뛰어내린다. 케빈(라이언 메리맨) 등 엉겁결에 웬디와 함께 내린 일행은 살고, 롤러코스터에 남은 친구들은 환영대로 죽는다.
생존자들이 예정된 운명에 의해 죽어간다는 참신했던 발상은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에서 이미 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공식’이 되어 구태의연한 느낌을 준다. 디카 사진에 암시된 대로 생존자들이 죽게 된다는 ‘죽음의 방식’도 전편들보다 너무 수월하게 예상 가능하고, 그래서 긴장감도 떨어진다.
대신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은 생존자들이 죽어가는 방식을 더 자극적이고, 잔인하게 보여주는 데 치중하며 관객들의 놀람과 비명을 이끌어낸다. 열통 속에서 타고, 머리통이 으깨지고, 대못에 가차없이 박히고, 사지가 절단되는 모습들이 가감없이 스크린 속에 널브러진다.
피칠갑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먹는다는 데 아연실색할 관객들도 있겠지만,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은 그게 가능한 영화다. 죽음은 예견돼 있고 순서도 정해져 있어, 관객들이 순서대로 진행되는 등장인물들의 죽음을 비교적 덤덤히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죽음과 운명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유나 신체 훼손에 대한 도리나 예의를 찾지 않는 가벼운 태도 탓에, 관객들도 등장인물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팝콘 속에 손을 집어넣을 수 있다. 11일 개봉.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미로비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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