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쐬러온 남녀와 현지인
사벌·섬뜩한 삼겹살파티
폭력 통해 인간이중성 꼬집어
사벌·섬뜩한 삼겹살파티
폭력 통해 인간이중성 꼬집어
영화 ‘구타유발자들’
31일 개봉한 〈구타유발자들〉은 시쳇말로 ‘먹기 좋은 떡’은 아니다. 그건 이 영화가 특별히 잔인해서가 아니다. 스크린을 채우는 물리적 폭력의 강도만을 측정하자면 조폭 또는 범죄자와 형사를 등장시키는 상업영화들에 비해서 과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른 건 폭력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이 영화에서 폭력은 남다른 사연으로 포장되지 않고 스타일로 전시되지도 않는다. 볼거리가 될 수 없는 폭력은 견디기 괴롭다. 〈구타유발자들〉은 이처럼 날것으로서의 폭력 그 자체를 응시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장르를 굳이 나누자면 정서적으로 액션영화보다 공포영화에 가깝다. 대부분의 사건이 진행되는 한 장소는 소박한 야유회가 열릴 만한 조용한 냇가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펼쳐져 있건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폐쇄공포증을 일으킨다. 보이지 않는 이 덫에 걸려 구타를 유발하는 건 서울에서 온 성악과 교수와 여제자다.
중년의 교수는 여제자 인정(차예련)에게 수작을 걸기 위해 임시번호판도 떼지 않은 벤츠 자가용을 몰고 한적한 이곳으로 온다. 그가 본색을 드러내자 인정은 실랑이를 벌이다 뛰쳐나가고 얼마 뒤 그를 찾아오는 건 피떡이 된 야구방망이를 멘 오근(오달수)과 배달 오토바이에 꿈틀거리는 보따리를 싣고 이곳에 놀러온 동네 건달들이다. 한편 절뚝거리며 도망을 치던 인정은 지나가던 동네 사람에게 도움을 구한다. 봉연(이문식)은 스쿠터 뒷자리에 인정을 태워 버스 터미널에 데려다 주기로 하고 그 전에 잠깐 들를 데가 있다며 가는 곳이 바로 인정이 도망쳐왔던 그 냇가다. 봉연과 오근 일행은 여기서 약속했던 삼겹살 파티를 벌이고 여기에 외지인인 두 사람이 끼게 된다.
이 파티장은 기괴한 불협화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익지도 않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교수님”에게 주며 “사람 성의를 봐서” 먹으라고 봉연이 베푸는 친절에는 으스스함이 흐른다. 자기들끼리의 장난인지 싸움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대화와 살벌한 눈빛이 수시로 오가며 아니나 다를까 외지인의 냉담과 거절, 숨기지 못하는 경멸감은 토박이들의 ‘야성’을 점화시킨다. 순진한 건지, 무식한 건지, 음흉한 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행동은 예측불허다. 어처구니없어 실소가 나오면서도 상황은 점점 더 보는 이의 목덜미를 죄어온다.
인공조명을 최대한 억제했다는 이 영화의 화면은 아이러니하게도 비현실적으로 창백하다. 섬뜩할 만큼 냉정한 화면은 패면서도, 맞으면서도 웃을 수 있는 폭력의 내면화와 폭력 앞에서 끝없이 비굴해지고 또 폭력에 감염되는 그 악몽 같은 순환고리를 몰아치듯 보여준다. 〈구타유발자들〉은 흔히 상업영화라는 테를 두르고 있을 때 이런저런 빠져갈 구멍을 만들며 ‘먹기 좋은 떡’을 빚다가 결국 식상한 ‘기성품’을 뽑아내는 안이함에서 벗어나 있다. 다만 봉연이 ‘구타자’가 된 계기가 드러나는 과정은 ‘폭력에 노출됐던 사람이 폭력을 일으킨다’는 식의 범상한 교훈담에 머물러 폭력 그 자체의 광기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발휘하던 이 영화의 긴장감을 빠지게 하는 아쉬운 점이다.
그럼에도 〈구타유발자들〉은 값싼 당의정이 대중성으로 종종 오역되는 충무로 영화판에 자극을 줄 만한 새로운 영화다. 오랜만에 악역으로 등장해 기꺼이 스타일을 구긴 한석규를 비롯해 이문식, 오달수, 젊은 배우 정경호와 신현탁까지 찰떡 앙상블을 이루는 연기자들의 호연도 찬사를 받을 만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코리아엔터테인먼트 제공
원신연 감독
구토유발자라고?…상업영화 관행 손봐야죠”
〈자장가〉 〈빵과 우유〉 등을 통해 단편영화계의 총아로 주목받았던 원신연(37) 감독의 첫 장편 상업영화 〈가위〉(2005)는 극단적으로 평이 갈렸다. 그래서 원 감독의 두번째 장편 영화 〈구타유발자들〉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그의 자질을 검증해 줄 실질적인 첫 영화로 기대를 모았다.
〈한겨레〉는 〈구타유발자들〉 촬영이 75% 가량 끝났던 올해 초, ‘2006년 문화계 샛별’로 원신연 감독을 꼽기도 했다.
개봉을 앞두고 미리 언론에 공개된 〈구타유발자들〉은 전작보다 더 크게 엇갈리는 평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한 쪽에서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화법으로 인해 상업영화에 적합하지 않은 ‘구토유발자’라는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상업영화 속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아낸 감독의 뚝심과 밀도 있고 사실감 넘치는 화면을 만들어내는 재주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구타유발자들〉이 상업영화로 부적절하다면, 그럼 상업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겁니까?”
30일 광화문에서 만난 원 감독은 단호한 어조로 ‘상업영화’를 규정하는 잣대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구타유발자들〉을 보고 별점을 아예 안 주는 관객도 있지만, 별을 5개 주는 관객도 있다”며 “전자 같은 관객의 취향과 눈높이로 상업영화를 규격화시키고, 후자 관객들의 의식을 무시해왔던 기존 상업영화의 관행이 문제”라고 말했다. “〈구타유발자들〉에 관객들이 반응하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도 의미있는 작업이고, 그때부턴 다양한 상업영화들이 만들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가 “이제 한국에서 어떻게 영화 만들래?”라는 지인들의 농담 반 진담 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불편한 방식’을 밀어붙인 이유다.
원 감독은 “인간의 이중성을 깊게 투영한 영화인데다, 관객들이 자신의 이중성을 들여다보게끔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며 〈구타유발자들〉의 ‘불편함’에 대해 설명했다. “대부분의 인간은 폭력의 비인간성을 말하면서도 실제로 폭력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폭력의 순환 고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지만 자신은 폭력과 무관하다고 착각하는데 〈구타유발자들〉이 바로 그 이중성을 꼬집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불편함’과는 별개로 상업영화로서 관객에 대한 배려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점을 덧붙였다. 그는 “이야기의 ‘세기(강도)’가 재미를 덮지 않게 하기 위해 영화 중반까지 블랙유머를 최대한 살렸고,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영화의 호흡을 빠르게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글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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