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콜라
내 뇌 속 100조개의 뇌세포 가운데 ‘영화배우 최민식’에 대한 정보를 담은 뇌세포가 ‘스크린쿼터’ 뇌세포와 최초로 정보를 교환한 건 지난 2월7일이었다. 그날 최민식은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울분을 토하며 〈올드보이〉 때 받은 옥관문화훈장을 반납했고, “스크린쿼터가 없으면 〈올드보이〉도 없습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에 나섰다. 속으로 ‘오…민식 오빠 무지 다혈질이시구만, 멋지셔!’ 했지만, ‘저러다 말겠지’ 했던 것도 (정말 미안하게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경솔한 의구심에 한 방 먹이기라도 하듯 보란 듯이, 그는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스크린쿼터 원상회복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투쟁의 한 가운데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최민식의 투쟁이 나날이 더 옹골차질수록, ‘의구심’이 있던 자리에 또 ‘우려’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저러다 완전히 ‘반정부 투쟁의 전사’로 낙인찍혀 인기 다 떨어지는 거 아냐?’같은 노골적인 우려도 있었고, ‘너무 오래 싸움판에 있다가 행여 연기하는 데 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잖은 우려도 있었다.
얼마 전 최민식을 만나 스크린쿼터 투쟁에 ‘올인’하고 있는 그의 근황과 속내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이때 그가 잠깐 영화배우 최민식의 ‘배우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확신에 차 있으면서도 여유가 넘치던 그의 말은 이런 저런 우려를 가시게 하기에 충분했다.
최민식은 먼저 “‘배우=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설명 내지는 정의는 대중과 배우의 관계를 ‘주-종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것인데, 대중과 배우는 주인과 종이 아니라 ‘배우가 연기한 인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친구’”라는 것이다. 그는 “대중들이 정부와 수구언론의 전략에 의해 스크린쿼터의 필요성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위험성에 대해 오해를 하게 됐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친구가 나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에 대해 오해하고 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주저없이 투쟁에 나섰다. 그가 ‘낙인’이나 ‘인기하락’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투쟁의 전면에 나선 이유였다.
그는 또 투쟁을 연기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하고 있기도 했다. 그는 “배우들한테는 작업을 하지 않는 기간이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을 들어가기 전, 무엇을 비워내고 무엇을 새로 담느냐에 따라 연기의 폭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촬영현장을 떠나 투쟁현장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대도, ‘감’이 떨어질 걱정은 없다. 그는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분노를 진하게 느껴보고,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그 분노를 표현하고 행동에 옮겨보고 싶었다”며 “사실 아주 이기적인 계기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겸양을 보여주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배우는 관객의 친구고, 연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는 식의 얘기는 다른 배우들과의 인터뷰에서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최민식의 이야기에 유독 귀가 번쩍 열리고 마음이 움직이는 건, 그가 보여주고 있는 행동이 말을 ‘증거’하기 때문인 듯하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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