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엇갈린 도박사 4명
전략·함정이 퍼즐처럼
전략·함정이 퍼즐처럼
만화 〈타짜〉를 본 사람이라면 영화 〈타짜〉의 포스터에 네 사람이 앉아 있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원작에서는 고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주변 인물들이 계속 바뀌어나가지만 영화에서는 포스터처럼 네 사람이 서로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함께 끌고 간다.
영화 〈타짜〉는 캐릭터 드라마에 가깝다. 평범한 공장노동자에서 도박으로 베엠베(BMW)를 타고 다닐 꿈을 꾸는 승부사로 변신하는 고니(조승우)와 엘리트 출신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정 마담(김혜수), 마치 신선처럼 유유자적하는 전설의 타짜 평 경장(백윤식), 수선스러우면서도 소심한 샐러리맨형의 도박사 고광렬(유해진)의 서로 다른 욕망이 일으키는 자장 안에서 드라마가 짜이고 드라마 속 인간관계가 재편된다. 냉혹한 타짜 아귀(김유석)와 도박판의 배후조종자 곽철용(김응수) 등 조연 캐릭터들도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저마다 자신을 ‘뛰는 놈 위의 나는 놈’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그들이 뱉어내는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들로 2시간20분이 한순간의 공백 없이 채워진다.
고니는 자신이 일하던 가구공장에서 벌어진 화투판에 순진하게 끼어들었다가 이혼한 누나의 위자료를 모두 들어먹는다. ‘꾼’들의 판에서 자기가 당한 걸 알게 되자 그들을 찾기 위해 전문도박판을 뒤지고 다니다 평 경장을 만난다. 평 경장 밑에서 타짜가 되는 법을 배우고 함께 원정을 다니다가 고니는 도박판 설계자인 정 마담을 만나고 정 마담의 펴놓은 판에서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 고광렬과 죽이 맞아 함께 전국의 화투판을 휩쓸게 된다.
도박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갈 길은 두 갈래다. 이러저러한 사연을 가진 초짜가 진정한 전문도박꾼으로 거듭나 최고가 되는 과정을 스포츠 중계처럼 탄력있게 보여주거나 야심찬 주인공의 허황된 꿈이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욕망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것. 〈타짜〉는 후자에 무게중심을 두면서도 전자의 이야기 방식이 주는 쾌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욕심이 많다 보니까 드라마가 많아지고 영화는 많은 인물과 많은 드라마가 퍼즐처럼 정교하게 짜여진다. 〈범죄의 재구성〉이 에피소드에서 에피소드로 직접적 인과관계를 가지고 달려간다면 〈타짜〉는 등장인물들 각자가 머리를 굴려 만드는 전략과 그들이 빠지는 함정을 짜놓고 x, y, z축 위에서 그것들의 연결지점을 만든다. 집중해서 개별 인물과 에피소드를 따라가지 않으면 중후반쯤 너무 많은 이야기들에 버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또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반짝하는 눈빛에서 수많은 감정의 낙차를 겪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따라가기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에서 ‘루스 타임’을 찾기 힘든 건 〈타짜〉가 자기 욕심을 감당할 줄 아는 영화라는 의미다. 특히 중후반까지 계속 새로운 패만 돌리는 것 같던 영화가 클라이맥스와 결말에서 판을 수습하는 방식은 크레믈처럼 무표정하게 판돈을 던지다가 산더미처럼 앞에 쌓인 돈을 가볍게 쓸어가는 타짜의 손길처럼 얄밉도록 기민하다. 28일 개봉.
김은형 기자
최동훈 감독 ‘한탕’ 기질 촘촘한 묘사
〈타짜〉의 최동훈(35) 감독은 튀는 예술가라기보다는 머리 좋은 반장 같은 느낌을 더 강하게 주는 사람이다. 그런 그의 인상과 비슷한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이 보여준 안정감과 신뢰감이 〈타짜〉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였다. 22일 만나 두번째 연출을 마친 소감을 물으니 “첫 작품 때보다 심한 불면에 과민성 대장증상”이라고 ‘소포모어 콤플렉스’를 털어놓으면서도 “패는 뒤집어졌으니까”라고 예의 여유있는 웃음을 흘린 최 감독에게서 듣는 〈타짜〉의 게임스토리.
-1년 넘게 혼자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원작과는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70년대 농민의 이야기가 90년대 노동자 계급으로 바뀐 거지만 본질적인 부분은 원작에 다 있는 것이다. 차이라면 원작은 선형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데 비해 한 사람씩 모였다가 하나씩 빠져나가는 원형적 이야기로 바꾸면서 정 마담의 역할이 커졌다. 정 마담을 중심으로 한 축의 이야기가 꿰어지면서 그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가짜돈’ 만드는 데 1천만원 써
조승우·김혜수는 ‘상상력’ 자극 -화투를 치는 장면 안에 드라마와 캐릭터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화투를 치는 모습 자체는 굉장히 정적이다. 처음에는 화면분할 등을 적극적으로 쓰면서 빠른 흐름으로 진행해 화투 치는 모습 자체를 스펙터클하게 보여주다가 점점 느리고 길게 찍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 캐릭터와 드라마가 느려지는 리듬에 긴장을 더하는 식으로 말이다. -〈범죄의 재구성〉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느낌도 드는데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범죄…〉가 결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이야기였다면 〈타짜〉에서는 캐릭터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의 기질 같은 게 있다. 기질이란 건 선악의 전형성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캐릭터를 오히려 모호하게 만든 측면도 있다. 〈타짜〉는 결국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이야기다. -조승우, 김혜수가 캐스팅됐을 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과 갸웃하는 사람이 반반이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배우와 작업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기대하는 이미지와 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이다. 조승우는 구체적인 디렉팅이 필요없는 굉장히 똑똑한 배우다. 앉아서 화투만 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주먹 싸움에 와이어 액션으로 부상을 입어 병원을 들락날락거리면서 “감독님이 사기꾼이야”라는 불평도 했지만 말이다(웃음). 김혜수도 마찬가지다. 정 마담의 센 이미지는 그저 김혜수를 세워놓기만 하면 나온다. 그래서 그 캐릭터의 다른 부분을 보여주는 데만 몰두할 수 있었다. -두 연출작이 테마나 스타일 면에서 공통점이 많은데 3부작으로 완성할 계획도 있나? =더 이상 가짜 돈 만드는 데만 1천만원씩 쓰는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웃음). 요새 고전을 다시 찾아 읽게 되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문학적인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영화는 본질적으로 개인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작업이기 때문에 무엇을 만들건 내가 이야기를 푸는 방식이나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최동훈 감독 ‘한탕’ 기질 촘촘한 묘사
조승우·김혜수는 ‘상상력’ 자극 -화투를 치는 장면 안에 드라마와 캐릭터를 부여하는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화투를 치는 모습 자체는 굉장히 정적이다. 처음에는 화면분할 등을 적극적으로 쓰면서 빠른 흐름으로 진행해 화투 치는 모습 자체를 스펙터클하게 보여주다가 점점 느리고 길게 찍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 캐릭터와 드라마가 느려지는 리듬에 긴장을 더하는 식으로 말이다. -〈범죄의 재구성〉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느낌도 드는데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범죄…〉가 결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이야기였다면 〈타짜〉에서는 캐릭터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의 기질 같은 게 있다. 기질이란 건 선악의 전형성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캐릭터를 오히려 모호하게 만든 측면도 있다. 〈타짜〉는 결국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이야기다. -조승우, 김혜수가 캐스팅됐을 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과 갸웃하는 사람이 반반이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배우와 작업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기대하는 이미지와 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이다. 조승우는 구체적인 디렉팅이 필요없는 굉장히 똑똑한 배우다. 앉아서 화투만 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주먹 싸움에 와이어 액션으로 부상을 입어 병원을 들락날락거리면서 “감독님이 사기꾼이야”라는 불평도 했지만 말이다(웃음). 김혜수도 마찬가지다. 정 마담의 센 이미지는 그저 김혜수를 세워놓기만 하면 나온다. 그래서 그 캐릭터의 다른 부분을 보여주는 데만 몰두할 수 있었다. -두 연출작이 테마나 스타일 면에서 공통점이 많은데 3부작으로 완성할 계획도 있나? =더 이상 가짜 돈 만드는 데만 1천만원씩 쓰는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웃음). 요새 고전을 다시 찾아 읽게 되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문학적인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영화는 본질적으로 개인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작업이기 때문에 무엇을 만들건 내가 이야기를 푸는 방식이나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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