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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부산국제영화제가 주목한 두 신인감독

등록 2006-10-18 20:53수정 2006-10-18 21:08

언제부턴가 부산국제영화제는 역량이 빼어난 국내 신인 감독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여자 정혜>의 이윤기, <귀여워>의 김수현, <용서받지 못한 자>의 윤종빈 감독 등등이 이 영화제에서 자기 존재를 보여줬다. 올해 부산영화제도 한국 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여러편 초청했다. 그 중 두 명을 인터뷰했다.

신동일 감독 “한국의 켄 로치 되고 싶다”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된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신동일(38) 감독은 영국의 노장 좌파 감독 켄 로치를 가장 좋아한다. 켄 로치는 30대 초반부터 70살인 현재까지 줄기차게 노동계급을 포함한 기층 민중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왔다. “이렇게 말하면 부끄럽지만, 한국에서도 켄 로치의 뒤를 잇는 감독이 나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한다.” 그는 영화가 담아야 할 요소로 “애정과 연민과 연대의식”을 꼽았다. ‘애정’과 ‘연민’을 중시하는 감독들은 많지만, ‘연대의식’을 말하는 이는 드물다. 모처럼 충무로에 사회파 감독이 하나 나온 셈이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지식인의 양면성, 좀더 구체적으로 운동권 출신들의 부채의식을 냉정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예준(장현성)은 대학 때 운동권 출신이지만, 외환 딜러라는 자본주의 첨단 직종에서 승승가도를 달린다. 학력이 고졸인 재문(박희순)은 요리사로, 군에서 예준을 만나 둘도 없이 친해졌다. 재문은 예준에게 선망과 존경심을 갖고 있고, 예준은 자신보다는 더 민중에 가까운 재문을 돌보듯 아낀다. 둘은 의식속에서 뭔가를 서로에게 빚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둘의 관계가 몇몇 사건을 거치며 깨져나가고, 그와 함께 둘 각자의 내면도 피폐해진다. 죄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둘은 모두 재문의 아내인 미용사 지숙(홍소희)에게 의지하려 하면서 묘한 삼각관계를 만들고 셋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지숙은 둘과 달리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힘겹게 삶을 추스린다.

현대 지식인의 양면성 그려 “영화는 연대의식 담아야”


“셋의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를 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상을 한 건 1998년 구제금융 뒤였는데 중단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가 거기에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신 감독은 “가장 계급적인 군대 사회에서 고참과 졸병이면서도 친구처럼 지냈던 둘이 거꾸로 사회에서 나와서 주종관계에 들어서게 되는 건데, 계급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힘들게 일하며 사는 지숙같은 인물이 사회를 끌고갈 밑천 아닐까”라면서 “꼭 희망을 의도한 건 아니지만 관객들이 지숙에게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영화가 남녀간의 성문제를 다룰 땐, 어딘가 도덕적인 면모가 엿보이는 듯도 한다. “내가 모럴리스트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도덕적 딜레마를 느끼는 대목이 있다. 인간의 욕망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담론화된 지도 제법 되는데, 일상성이 결여된 역사성은 공허할 수 있지만 역사성이 결여된 일상성은 빈약하다고 할까.”

<나의 친구…>은 실제로는 신 감독의 두번째 장편이다. 2005년에 장편 데뷔작 <방문자>를 부모님 돈, 친구들 돈으로 독립영화 만들듯이 찍었고, 후반작업할 때 투자자가 붙어 완성했다. 신 감독 스스로 “소통과 연대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는, 블랙코미디 <방문자>는 베를린, 시애틀, 카를로비바리, 시카고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오는 11월, <나의 친구…>는 내년 상반기 개봉할 예정이다.

부산/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엘제이필름 제공


김태식 감독 “영화란 새롭고 재밌어야죠”

마흔 여덟, 늦깎이 신인 김태식 감독은 첫 장편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로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새로운 물결(뉴 커런츠) 부문에 진출했다. 1998년 <가족시네마>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지 8년만에 세상에 선보인 그의 첫 장편은 아이러니와 페이소스의 절묘한 배합과 매혹적인 시각적 표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엉뚱하지만 재치있는 유머로 관객들의 열띤 반응을 이끌어내며 올해 부산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김 감독은 <아내의…>를 “사랑 없는 질투에 관한 영화고, 남자들의 속물근성에 관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일단 아내를 죽이는 상상을 해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내를 사랑해서 그러는 건지, 그저 질투일 뿐인지 헷갈리죠. 결국 대부분은 큰 일 안 벌리고 그냥 넘어가요. 그렇지만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어수룩할 뿐더러 봐야 알고, 들어야 믿는 속물근성이 있어서 아내가 그 남자와 잤는지 안 잤는지, 잤다면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은 지 어떤 지 확인하고 싶어하죠.”

<아내의…>는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는 영화다. 강원도에서 도장을 파며 사는 태한(박광정)은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현장을 잡으려고 계획을 세운 뒤 아내의 애인 중식(정보석)이 사는 서울로 향한다. 태한은 자신을 그저 손님으로만 아는 ‘운짱’ 중식의 택시를 잡아타고 강원도 낙산행 장거리 운행을 제안한다. 기묘한 드라이브가 계속되는 사이, 두 사람은 여러 상황과 맞부닥친다. 그 와중에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가 하면, 우정 비슷한 교감을 느끼기도 한다. 태한은 중식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지만, 예상치 못했던 반전으로 피해―가해 관계와 권력 관계가 뒤바뀌는 경험도 하게 된다.

사랑없는 질투·남자 속물근성 은유와 유머로 즐겁게 시각화

부산에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비주얼이 새롭다’는 질문과 평가가 이어졌다. 두 남자를 향해 굴러내려 오다 쪼개지는 수박들의 이미지, 두 남자가 함께 산에서 오줌을 누다 헬리콥터가 일으키는 바람 때문에 수난을 겪는 장면 등, 왜소하고 부실하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는 두 남자의 가련함과 삶의 아이러니를 희극적으로 시각화하는 점이 탁월했다는 지적이었다.

“수박은 겉과 속이 확연히 다른 거며, 깨질 때 나타나는 이미지하며, 두 남자의 모습을 상징하죠. 오줌을 누다가 헬리콥터 때문에 봉변을 당하는 건 제 실제 경험에서 따온 건데, 역시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요.” 김 감독의 말처럼 <아내의…>에는 은유와 상징 가득한 시각적 표현들이 풍성하고,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는 유머가 담겨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영화는 새로워야 하고, 재밌어야 한다”는 영화관을 드러냈다. 10억원 가까이 제작비를 들인 <아내의…>를 두고는 “난 절대 이 영화를 저예산 영화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특히 저예산 영화들은 ‘무겁다’는 식으로 이미지화가 돼 있는데, 저예산 영화일수록 재밌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덧붙이기도 했다.

<아내의…>는 내년 상반기께 개봉돼 일반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며, 해외배급도 추진하고 있다.

부산/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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