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산 공포영화 〈울프 크릭〉은 철없는 청춘들의 여행길에 살인마가 나타나서 이유 없이 처참한 살육전을 벌이는 난도질(슬래셔) 영화의 공식을 따라가는 듯 비켜가는 독특한 작품이다. 영국의 젊은 여성 배낭여행객 크리스티(케스티 모라시)와 리즈(커샌드라 머그래스)는 파티에서 시드니 출신의 청년 벤(네이선 필립스)을 만나 함께 울프크릭으로 떠나게 된다. 울프크릭은 ‘아웃백’이라고 불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 한가운데 있는 거대 운석 추락지점. 황량하면서도 압도적인 자연경관을 만끽한 이들을 기다리는 건 고장난 자동차와 고립무원의 오스트레일리아 사막이다.
우선 〈울프 크릭〉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거대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공포의 무대로 바꿔낸다. 화면은 시종 푸른 하늘과 구름 사이로 비치는 타는 듯 붉은 노을, 육중한 지형지물을 펼치면서 세 여행자와 관객을 찬탄하게 한다. 그러나 차가 고장나고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여행자들이 고립감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자연은 그 자체로 서서히 악몽이 되어간다.
두번째로 이 영화가 할리우드 난도질 영화와 다른 점은 괴물, 즉 연쇄살인범을 다루는 방식이다. 보통 난도질 영화에서 괴물은 난데없이 등장해 정신없이 무기를 휘두르지만 〈울프 크릭〉에서 괴물은 구원자로 나타난다. 추위에 떨던 세 여행객에게 접근해 차의 상태를 봐주는 남자는 리즈의 말마따나 “마치 〈크로커다일 던디〉의 주인공처럼” 투박하면서도 마음 좋은 오스트레일리아 사나이의 전형으로 보인다. 세 사람이 차를 고쳐주겠다는 남자의 집에 따라와서 모닥불을 피우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다.
어쩔 수 없이 낯선 이에게 의존해야 하면서도 경계심을 풀 수 없는 이들이 가지는 두려움을 영화는 관객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한다.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낯선 이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영화 속 공포를 스크린 속의 비명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언제나 닥칠 수 있는 공포’로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관객의 예상대로 불길한 호감은 하룻밤 만에 잔인한 본색을 드러내고 두 여자는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끔찍하게 감금돼 있던 벤만이 살아남아 경찰로 호송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실제 연쇄살인범 소굴을 탈출한 인물인 벤의 진술에 의해 재구성됐다. 사건은 종결됐지만 아웃백의 자연은 태연하게 위용을 자랑하고 또 어디선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임을 암시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지명과 같은 이름의 인기 식당체인에서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를 목에 넘기기가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다. 26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스폰지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