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찬욱 감독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찬욱 감독
박찬욱(43)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재밌건 재미없건 독특하다는 덴 동의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줄거리가 아니라 이미지가 고갱이다. 새롭긴 한데 이 ‘사이코 연인’은 영 친절하지 않다.
흥행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안될 거라) 예단하는 거 아니에요?(웃음) 환상과 현실을 자주 오가니까 낯선 감이 있겠죠. 이 장면이 무슨 의미일까 따지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보면 되요. 오히려 아이들은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정지훈, 임수정, 박찬욱 감독의 이름값인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지난 6일 인터파크, 티켓링크 등에서 예매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복수에서 사랑으로 적응 애먹어
논리를 따지는 게 허황될 수도 있겠다. 정신병원이 배경 아닌가. “보통 정신병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의료진이나 가족의 시각으로 그려지잖아요. 그런데 이상한 게 당연한 세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환자들끼리만 있다면 서로 친해지기도 하고 사랑도 하지 않겠어요?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 말들이 오고가는 집단치료 장면이 (제가 이 영화를 구상하며 가진) 최초 이미지에요.”
그 최초의 이미지는 사랑 이야기로 뻗어 나간다. 그가 이제까지 건드리지 않았던 주제다.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죠. 장면이 관습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을까…. 서로 동정하고 공감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소중하다는 이야기에요. 영군이 울먹이면서 웅얼거리니까 일순이 그걸 알아 들으려고 애쓰잖아요.”
정지훈은 신선, 그를 위한 작품 정지훈(비)이 토끼머리를 하건 임수정이 눈썹을 허옇게 칠하건, 그들이 어떤 사랑 이야기를 하건, 그들이니까 귀기울여지기도 한다. “정지훈씨가 영화상 시상식에서 노래하는 걸 봤는데 아름답고 도도한 여배우들이 입을 벌리고 어쩔 줄 몰라 하더라고요.(웃음) 대단하구나 그랬죠. 술을 마셔보니까 건전한 총각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다듬어지지 않은 신선함이 필요했고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이었죠. 시나리오가 구체화되기 전에 같이 작업하기로 했고 이 친구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만들었어요. 촬영 현장에선 젊은 여성 스태프들도 정지훈씨를 동네 총각 대하듯 했어요. 그렇게 소탈해요. 임수정씨는 이제까지 그늘 지고 상처 입은 역할을 많이 했는데 새로운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싸이보그…>는 그의 전작들과 주제·분위기가 다르지만 비슷한 점도 엿보인다. 왜 인물들은 답이 없는 근본적인 질문들에 골몰할까? 영군은 존재의 목적을 갖고 싶어하고 일순은 소멸될까 떤다. “이루지 못하더라도 답을 찾으려는 투쟁이 가치 있다는 게 제 영화들의 주제죠.” 왜 별로 죄지은 것도 없는 사람들이 응징을 당할까? 영군이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하얀맨(의사)의 잘못이라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입원시킨 것밖에 없다. “해코지할 뜻이 없어도 살다보면 악행을 저지르게 돼요. 개인이 선한 의지만 가지면 문제가 풀릴 것 같이 말들 하지만 그것만으론 힘들잖아요. 운명이나 사회 구조의 문제일 수도 있고….” 그가 만든 유머는 대개 역설이다. “현실은 부조화·부조리로 가득 차 있는데 영화나 소설, 매체들이 그걸 희석시키고 상식의 환상을 만드는 것 같아요.”
‘답없는 답찾기’ 그것만으로 가치
<싸이보그…> 다음으로 그는 송강호가 흡혈귀로 나오는 <박쥐>를 준비하고 있다. 헐리우드에서 오는 연출 제안은 어쩔 셈일까? “아시아 감독들에게 주어지는 건 예전엔 액션, 요즘엔 공포예요. 그렇게 시작하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들어오는 시나리오나 소설이 영어니까 읽기도 힘들어요(웃음).”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정지훈은 신선, 그를 위한 작품 정지훈(비)이 토끼머리를 하건 임수정이 눈썹을 허옇게 칠하건, 그들이 어떤 사랑 이야기를 하건, 그들이니까 귀기울여지기도 한다. “정지훈씨가 영화상 시상식에서 노래하는 걸 봤는데 아름답고 도도한 여배우들이 입을 벌리고 어쩔 줄 몰라 하더라고요.(웃음) 대단하구나 그랬죠. 술을 마셔보니까 건전한 총각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다듬어지지 않은 신선함이 필요했고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이었죠. 시나리오가 구체화되기 전에 같이 작업하기로 했고 이 친구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만들었어요. 촬영 현장에선 젊은 여성 스태프들도 정지훈씨를 동네 총각 대하듯 했어요. 그렇게 소탈해요. 임수정씨는 이제까지 그늘 지고 상처 입은 역할을 많이 했는데 새로운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박찬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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