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목소리> 박진표 감독
<그놈 목소리> 박진표 감독
<그놈 목소리>는 박진표(41) 감독이 <죽어도 좋아> <너는 내 운명>에 이어 사실을 바탕에 두고 만든 영화다. 시사 프로그램 피디로 10여 년 일한 박 감독이 1991년 취재했던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을 뼈대로 삼았다. 이 사건에는 15년 동안 경찰 10만여명이 투입됐지만 결국 지난해 1월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놈 목소리>는 ‘현상수배극’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게 직설화법을 택한다. 목적은 뚜렷하다. 관객이 공분하고 행동하도록 호소한다. 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여야 했을까? 지난 25일 박 감독에게 물었다. 그의 답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내가 시인이었다면 시를, 소설가였다면 소설을 썼을 것이다. 감독이니까 영화로 만들었다. 취재할 때부터 분노했고 15년 전부터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개인의 아픔은 작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모여 시대의 아픔이 된다. 우선 범인에게 사회가 널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이래도 편하게 살 수 있겠냐라고 묻고 싶었다. 유괴가 줄길 바라는 마음과 (너무 짧은) 공소 시효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포함돼 있다.”
영화는 단선적인 직구를 닮았다. 범인은 협박 전화를 걸어대고 아버지 한경배(설경구)와 어머니 오지선(김남주)은 애원하며 온 시내를 헤맨다. 경찰은 늦되다. 이 쳇바퀴가 44일 도는 동안 부모의 몸부림은 날로 처절해진다. 카메라는 집요하게 부부의 충혈된 눈, 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카락을 잡는다. 왜 수사물로 가지치기하며 추리의 묘미를 살리지 않았을까? “부모의 절박한 심정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걸 어떻게 스릴러로 만드나? 고민이 많았다. 현상수배극이니까 사람들이 많이 봐야하고 재미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켜야 할 게 있다. 또 단순하다고 재미가 떨어지진 않는다.”
박 감독은 “범인의 지시 사항과 사건 정황은 그대로지만 캐릭터는 새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배의 직업을 뉴스 앵커로 바꿨다. “앵커는 개인들의 아픔을 객관적으로 전한다. 그 사람이 자기 고통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개인의 슬픔을 공분으로 바꾸는 데 가장 적절한 직업이다.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그 마지막이 영화의 뇌관이다.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가슴을 치는 피해자의 분노가 폭발하는 지점이다. 폭발력이 있지만, 설정이 작위적이라는 지적도 따라붙었다. “그 장면은 부모가 15년 동안 품어야 했던 마음이며 제작진의 심정이다. 이 장면이 없다면 이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다. 허구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작위적인 거 아닌가?”
영화의 화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 가슴을 때리는 힘이다. 배우의 몫도 컸다. 설경구는 마지막 장면을 30차례 찍었다. 화장기 없는 김남주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다. 강동원은 철저히 얼굴을 숨기고 오로지 ‘그놈’의 목소리로만 등장했다. 그런데 왜 강동원일까? “내 영화들은 사람들이 굳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스타가 필요하다. 또 목소리가 알려진 사람이어야 했다. 무명 배우 목소리라면 더 소름 끼칠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을 신고하면 어쩌겠나.”
보고 싶지 않아하는 이야기들? 노인의 성과 사랑(<죽어도 좋아>)이나 에이즈에 대한 편견(<너는 내 운명>)도 담았으니 얼추 맞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공통점은 사실과 허구를 버무렸다는 것이다. “일단 상상력이 없다. 진짜다.(웃음) 또 현실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어떻게 외면하나?”
그러면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가르는 경계는 뭘까? ”다큐는 객관적이어야 하고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 영화는 여기에 내가 보고,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너는 내 운명>에서 실제 모델들은 같이 살지 못했지만 나는 둘의 사랑을 축복하며 맺어주고 싶어 그렇게 만들었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그놈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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