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살, 수아’ 주연 이세영
‘열세살, 수아’ 주연 이세영
영화 속 어린 이세영은 대개 서늘했다. 〈여선생 VS 여제자〉(2004년)에서 미남이의 앙다문 입술과 초승달 눈썹은 도도한 기운을 뿜어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이를 괴롭히는 어린 금영이의 표정도 그 안에 어른 대여섯명은 들어앉은 듯했다. 그런데 특별출연을 빼면 3년 만에 나온 영화 〈열세살, 수아〉 속 청소년 이세영(15)은 나사 하나 빠진 듯 꺼벙하다. 수아는 점퍼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땅을 보며 걷는 내성적인 아이다.
범접하기 힘든 새침데기 아니었나? 지난 31일, 학원을 마치고 인터뷰 장소로 곧장 오느라 저녁을 못 먹은 이세영은 두유 빨리 마시기 자기 기록을 경신했다. 그렇게 마셔야 재미있단다.
중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깍쟁이 이미지가 강해 친구들의 시선이 따가웠던 모양이다. “제 머리가 갈색이거든요. 다들 염색한 줄 알았어요. 선생님 지적하려다가 그냥 넘어가시니까 애들이 ‘연예인이라서 봐준다’고 오해했어요. 제 성격 중에서 최고로 엽기적이고 털털한 면을 보여줬어요. 머리 안 감은 것도 크게 이야기하고….” 어색하고 긴장했는지 빵봉지를 손가락으로 말면서도 이세영은 친근하게 조잘댄다. “원래 제가 굉장히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거든요. 초등학교 때는 토론하면 끝까지 제 주장만 했어요. 그런데 이젠 별일 아닌 걸 끝까지 박박 우겨서 친구 이겨봤자 돌아오는 건 욕뿐이라는 걸 알아요. 분위기 파악해야죠.(웃음)” 15살끼리 이뤄진 사회도 적응하기 만만치 않아 어느 정도 자신을 틀에 맞춰 덜어내야 하나보다.
예전에는 제 주장만 했는데 이젠 분위기 파악했어요. 제 속에 영화 속 수아와 같은 내성적인 면이 숨어있는게 좋아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연기 생활이지만 좋은 작품 들어오면 열심히 하려고요
〈열세살, 수아〉에서 수아도 자기의 안과 밖, 꿈과 현실의 경계에 아슬아슬 서 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수아는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다. 식당을 하며 고물상 아저씨와 시시덕거리는 억척스런 사람(추상미)이 자기 진짜 엄마는 아닐 거라고, 관객을 압도하는 인기 가수(김윤아)가 진짜 엄마일 거라고 믿는다. 이세영은 진짜 수아 같은 아이가 학교 앞 분식점에서 묵묵히 떡볶이를 먹고 있을 듯 그렸다. “다들 저보고 밝고 외향적이라고 하지만 저도 학교에서 발표하려면 심장이 너무 떨려요. 제 속에 그런 내성적인 면모가 숨어 있는 게 좋아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가진 것 같아요.”
단역 가운데 한명으로 섰던 드라마 〈형제의 강〉(1996년)부터 치자면 올해로 이세영의 연기 경력은 11년째다. “찍고 나면 뭔가를 이룬 것같이 뿌듯해요. 연기자는 못 되겠다 생각한 적도 있어요. 〈여선생 VS 여제자〉 때 울며 속내를 이야기하는 부분을 이틀을 찍었어요. 아무리 다시 해도 안 되고…. 30번도 넘어가고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튀어나왔어요. 너무 미안하고….” 그때 이야길 하며 이세영의 눈은 벌게졌다. “〈열세살, 수아〉 때도 눈물이 안 나올까봐 겁을 먹었는데 그렇진 않았어요. 대본 볼 때부터 슬펐거든요. 그래도 눈물이 방금 뚝 떨어졌는데 그때야 촬영이 시작되면 (다시 울기 힘들어서) 짜증이 부글부글 끌어올라요. 제가 슬픈 기억이 별로 없어서 눈물 연기가 힘든가봐요.”
쉬는 시간에 공기놀이하거나 수다 떠는 게 좋다고 말할 때 이세영은 천진하다. “키가 더 안 클까봐 고민이에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싫어요.” 그러다가도 훌쩍 큰 것 같아 보인다. “연기는 평생 할 생각이지만 연기자는 캐스팅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내일을 기약할 수 없잖아요. 그럴 때를 대비해 중국어 통역사도 되고 싶어요. 성인 연기자로 넘어가는 과정도 걱정이에요. 어른이 되기도 전에 너무 많이 나오면 질린다고 하고, 공백기가 길면 얼굴이 변해버린다고 해요. 그저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열심히 하려고요.” 〈열세살, 수아〉(감독 김희정)는 16일 개봉한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열세살, 수아’ 주연 이세영
‘열세살, 수아’ 주연 이세영
‘열세살, 수아’ 주연 이세영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