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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나는 카메라 든 어부 ‘새만금 땀내’가 주연

등록 2007-06-17 17:54수정 2007-06-17 17:59

다큐 3부작 ‘어부로 살고 싶다’
다큐 3부작 ‘어부로 살고 싶다’
다큐 3부작 ‘어부로 살고 싶다’ 이강길 감독
다큐멘터리 감독 이강길(40)은 거의 뱃사람이다. 어장 종류도 줄줄이 꿰고 물고기도 척 보면 안다. 서울 토박이인 그가 이렇게 되는 데 7년이 걸렸다. 전북 부안군 계화도에서 이집 저집 더부살이하며 새만금 간척사업에 맞선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어부로 살고 싶다〉 시리즈 세 편으로 만들었다. 세 번째 작품 ‘살기 위하여’는 지난달 국제환경영화제에서 관객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다큐로 꼽혀 ‘관심단상’을 받았다. 그의 몸에 바다 짠내가 밴 만큼 다큐멘터리에 주민들의 땀내가 스몄기 때문이다.

새만금 이야기 7년 동안 기록
배타고 고기 잡으며 ‘동고동락’
“진실은 주민들 삶 속에 있다”

이모들, 삼촌들=〈어부로 살고 싶다〉 3편 ‘살기 위하여’는 대법원 판결 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재개된 현장을 담았다. 맨손으로 그레질하며 살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도드라진다. “(조개를 보며) 살이 쪽 말라버렸어. 예전엔 갯벌에 나와 이것들하고 놀았는데….”(이순덕) 패배가 코앞인 투쟁은 힘겨웠다. 주민들 요구도 ‘정당한 보상’과 ‘갯벌 보전’으로 미묘하게 갈렸다. 방조제가 닫히는 날, 한 아주머니가 목에 핏대를 세워 보상 쪽에 기운 마을 유지들에게 소리친다. “다 가버려!”

“아주머니들이 마을 기득권에게 큰소리 치는 걸 그때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어요. ‘왜 여자가 나서느냐’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그가 아주머니들을 ‘이모’라고 부르는 데 4년 정도가 걸렸다. 그 뒤부터 ‘이모’들은 닫혀가는 갯벌 대신 카메라 앞에 답답한 마음을 풀었다.

‘살기 위하여’에는 찍히는 대상과 찍는 사람이 섞여 있다. “갑봉이 삼촌(그는 마을 아저씨들을 삼촌이라 부른다)은 인터뷰만 하자 하면 술상을 봐요.” 그래서 ‘갑봉 삼촌’은 화면에서 상추를 입에 잔뜩 물고 웅얼웅얼하는 모습이다. 마을 사람들끼리 사실을 두고 가타부타 의견이 갈리면 그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강길이가 찍었을 거야. 누가 맞나 확인해 보자고.”

그러니 마을의 볼 것 못 볼 것 다 아는 셈이다. 무엇을 취하고 버릴지 어떻게 구분할까? “상대적으로 진실을 가진 게 제 다큐의 주인공인 아주머니들, 친구들이에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풀리죠.”


다큐 3부작 ‘어부로 살고 싶다’ 이강길 감독
다큐 3부작 ‘어부로 살고 싶다’ 이강길 감독
세 친구=시작은 2000년 봄 계화도에서 우연찮게 벌어진 술판에서였다.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운동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독립다큐멘터리 제작단 푸른영상에 들어왔을 때 석달 출장이 가능한 사람이 그밖에 없었다. 정의감에 불탔다기보다 “집에서 가깝고 좋아하는 자연다큐멘터리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푸른영상에 와본 터였다.

주민 어부를 만날 요량으로 카메라 들고 계화도 이쪽저쪽 헤매니 해질 무렵 두 청년이 그를 불러 세웠다. “뭐하는 사람이오?” 새만금 이야기를 꺼냈더니 술자리로 이끌었다. 동갑내기였던 두 친구는 5~6시간을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불콰해지자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서로 그를 끌었다.

예정됐던 석달이 지난 뒤에도 그는 비디오카메라 한대와 공테이프 100개만 들고 계화도로 돌아왔다. 친구들을 비롯한 동네 주민 집, 주민단체 사무실을 제집 삼았다. 그가 떠나지 못한 까닭은 친구들이 뇌까렸던 말 때문이다. “너도 곧 떠나고 우린 추억거리로 남겠지….”

어장 일을 도우며 배를 얻어 타고 숙식을 해결했다. “일하다 힘들면 다큐멘터리 찍는다는 핑계로 카메라를 들었어요.(웃음)” 3편쯤 되면 노란색 비옷을 입고 그물을 능숙하게 끌어올리는 그가 화면에 등장한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채로 장대에 묶고 일한 거예요.” 친구를 보채 주꾸미를 삶아먹고 ‘삼촌’들을 꾀어 회를 떠먹었다. 작업은 더뎠지만, 그렇다고 꼭 언제까지 만들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이 거기에=계화도에 간 지 1년 뒤 그는 간척 사업 반대 운동을 간추려 정리한 〈어부로 살고 싶다〉 1편 ‘새만금 간척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부안 사태의 원인을 새만금에서 찾는 ‘새만금 핵폐기장을 낳다’ 편은 2004년에 나왔다. 갯벌은 막혀가도 우울증에 걸린 마을 아주머니들, 마음을 열어준 친구들은 아직 계화도에 있다. 그래서 3편까지 만들며 60분짜리 비디오테이프 600여개를 다썼지만 그에겐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다.

‘살기 위하여’ 편은 인터넷(blog.jinbo.net/cameraeye)에 공동체 상영 신청을 하면 볼 수 있다. 수익은 갯벌배움터 ‘그레’의 후원금으로 쓰인다. 연말께 디브이디로 나온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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