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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누가 ‘혁명 청년’들을 집단살해했나

등록 2008-03-25 21:18

1972년 2월 연합적군 세력이 경찰에 쫓기며 설산을 행군하는 장면.
1972년 2월 연합적군 세력이 경찰에 쫓기며 설산을 행군하는 장면.
‘실록 연합적군’ 감독 와카마쓰 고지 현지 인터뷰
욕망과 절망이 빚은 비극
당사자 시각서 첫 조명
“지금도 국가 감시는 여전”

지난 15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영화관 ‘테아투르 신주쿠’. 영화가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어진 감독·배우와의 대화 자리에서 머리가 희끗한 60대 중년 남성들이 너도나도 마이크를 잡고 “우리들 얘기를 제대로 만들어줘 정말 고맙다”며 울먹였다.

이날 상영된 <실록 연합적군 아사마산장의 도정>은 개봉 전부터 일본 국내외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1972년 2월 산악훈련 도중 ‘총괄’(자아비판)이라는 이름으로 동료 14명을 집단살해해 일본 열도를 충격에 몰아넣은 연합적군(적군파의 한 세력) 사건을 다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아시아영화상과 국제예술영화평론연맹상을 받았고, 앞서 도쿄국제영화제에선 ‘일본영화·어느 시점’ 작품상을 수상했다.

‘실록 연합적군’ 감독 와카마쓰 고지
‘실록 연합적군’ 감독 와카마쓰 고지
연합적군 사건을 다룬 영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이후 세 편이나 제작됐다. 유독 이 작품이 주목받은 것은 당사자의 시각에서 만든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본 학생운동의 결정적 쇠퇴를 불러온 이 ‘판도라의 상자’ 뚜껑을 열고 카메라를 들이댄 사람은 71살 노감독 와카마쓰 고지다. 고교 중퇴 뒤 영화판에 뛰어든 그는 섹스·폭력·혁명·테러 등을 소재 삼아 40년 이상 국가권력 반대 의지를 줄기차게 표현해 온 반골 감독이다.

18일 도쿄 시부야에 있는 ‘와카마쓰 프로덕션’에서 만난 와카마쓰 감독은 “문화청에 제작비 지원 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했다”며 “제작비 2억엔을 마련하기 위해 이 사무실도 담보로 잡혔다”고 밝혔다. 그만큼 그는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나온 연합적군 영화는 흥미 본위로 만든 엉터리”라며 “특히 권력자의 시점으로 만든 <돌입하라 아사마산장>(2002년)은 제작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상영시간이 3시간10분이나 되는 것도 그만큼 할 이야기가 많았다는 방증이다. 1960년 안보투쟁부터 연합적군 결성까지 1시간 분량은 당시 뉴스필름을 썼다. “당시 시대 배경을 제대로 그리지 않으면 왜 연합적군이 태어났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 시대는 무엇이었는지 나는 검증하고 싶었다.”

그는 경찰로부터 “적군파의 배후”로 불렸을 정도로 적군파와 관계가 깊은 것으로 유명하다. 와카마쓰 프로덕션에서 일하던 각본가·조감독 등 젊은 영화인 일부는 나중에 일본적군에 참여하려고 팔레스타인으로 떠나기도 했다. 그도 “아사마산장을 점거해 총격전을 벌였을 때는 솔직히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동지 살해 소식을 듣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살해된 14명 가운데는 그가 만든 정치선전 영화 <적군-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 세계전쟁선언>(1971)을 도와주던 여대생도 있었다.


영화 속 연합적군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그들이 올발랐다거나, 전적으로 잘못됐다고 그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영화는 친구와 동지를 무참히 살해하게 되는 과정과 배경을 1시간 가량 집요하게 추적한다. 여기에는 적군파(세계동시혁명론)와 혁명좌파(마오쩌둥주의)라는 이념과 노선이 다른 세력이 연합적군이라는 무장투쟁세력으로 재탄생하면서 생기는 양쪽 지도자 사이의 선명성 경쟁, 의견이 다른 상대를 폭력으로 제압하려는 일본 운동권 문화, 인간개조를 시도한 중국 문화대혁명 홍위병의 영향 등이 배경으로 제시된다. 또한 그들은 ‘공산주의화’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집단폭행을 가했지만, 실제로는 도전하는 상대를 제거하려는 권력욕과 질투심, 쫓기는 자의 불안 심리, 이지메(집단따돌림) 같은 군중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는 형을 구타하는 동생, 임신 8개월인 여자 친구가 맞아죽는데도 모른 척하는 남자 등이 비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형의 자기비판 작업에 참여한 16살 소년이 “그때 우리는 용기가 없었다”고 울부짖는 장면은 바로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로 들린다.

그렇지만 그는 연합적군의 행동 모두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일본 학생운동을 망치긴 했지만, 좋은 대학에 다니고 가만히 있으면 출세가 보장되던 그들이 왜 총을 들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그때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라크 전쟁이 있고, 일-미 안보동맹이 있고, 국가의 감시는 더 강화되고 있다.”

198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이 없었으면 지금의 한국 민주화는 없었을 것이라는 그는 자신의 영화가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해 했다. 영화는 5월3~5일 전주영화제에 초청돼 한국에서 선보인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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