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익 감독
‘님은 먼곳에’ 이준익 감독
남편 찾아 베트남전 뛰어든 여자 이야기
“이젠 히스토리 아닌 허스토리 만들어야”
남편 찾아 베트남전 뛰어든 여자 이야기
“이젠 히스토리 아닌 허스토리 만들어야”
영화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대체로 좋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는 얘기도 있다.”
이해가 안 된다기보다는 수애(순이 역)의 캐릭터 혹은 존재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얘기 아닐까?
“의도가 설득력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입맛따라 보는 거지. 시나리오 작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플롯 중심과 캐릭터 중심. 이 영화는 100% 플롯 중심이고 캐릭터는 플롯에 봉사한다. 역사물에서는 특히 플롯이 중요하다. 캐릭터 중심으로 보게 되면 비약이 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영화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순진한 시골 여자 순이가, 말도 없이 베트남으로 떠나버린 남편을 찾아 전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이야기다. 순이는 베트남에 가려고 군인 위문 공연 밴드의 가수 ‘써니’가 된다. 영화는 순이가 베트남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활화산처럼 터지기 시작한다. 이 감독의 장기인 콘서트 장면과, 타이에서 찍은 전투 장면이 엇갈리고 만나며 마지막 꼭짓점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이 감독의 음악영화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최대인 70억원의 순제작비가 들어갔다.
영화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마지막 장면이 다 설명한다. 마지막을 정해놓고 계단식으로 쌓아올렸다. 영화에서 상길(엄태웅)은 20세기 남성성의 은유이고, 순이는 20세기 여성성의 대표다. 20세기에 남성들이 저질러놓은 전쟁이라는 부조리의 현장에서 여성성의 대표가 따귀를 갈기는 얘기다.”
그는 말로 영화를 찍듯 한 장면 한 장면을 길게 상기했다. 영화에 나오는 베트남인들의 땅굴에 담긴 의미를 보듬었고, 우리의 사대주의적 역사인식에 대해 일갈했다. 미국에서 밥 딜런이 반전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한국의 여인 순이가 전쟁을 독려하며 <수지큐>를 부르는 아이러니를 말했으며, 베트남 전쟁이야말로 한국 남자들에게 ‘돈의 신화’가 시작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은 우리의 눈으로 베트남전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왜곡된 우리 역사와 역사에 대한 인식을 영화로라도 풀고 싶다고 했다.
정만(정진영)이 나쁜 사람으로 설정됐는데,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 “나는 악인을 미워하는 대신 연민한다. 오죽하면 저렇게 됐을까? 사회의 책임이 있다. 정만은 약속을 어기니까 그런 의미에서 악인이다. 사람을 죽여야만 나쁜 사람인가? 그건 살인자지. 군인들은 다 살인자고. 여자의 눈으로 보면 미군이나 한국군이나 베트콩이나 모두 살인자다.” 처음으로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남성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온 데 대한 변명인가? “변명이 아니라 반성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인류가 아직 안 망한 건 여성성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히스토리였는데, 이제 허스토리(herstory)를 만들어야 한다.” 1년에 한 편씩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무엇에 쫓기고 있는 것 같다. 좀 천천히 가야 하지 않을까? “내가 원래 경솔한 인간이라 계획이 없다. 마구잡이로 산다. 초조불안증 환자이고, 워커홀릭이다. 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미친 듯이 일해야 행복하다. 잘못 배운 인생이지. 내가 지금 오십인데, 육십이 되도 안 바뀔 것 같다. 으이구.”
관객이 얼마나 들었으면 좋겠나?
“밑지지 않았으면. 투자자의 권익을 도모해야 하는 게 투자받은 자의 의무니까. 한국 영화의 위기는 100년도 더 됐다. 한국 경제가 언제 위기 아닌 적 있었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위기니까 영화 만들지 말아야 하나? 위기는 곧 기회다.”
그는 이성을 의심하고, 주류를 혐오하며, 남성성을 반성한다. 그것들의 쟁투의 현장이 바로 전쟁이다. 그가 <황산벌>부터 <님은 먼곳에>까지 전쟁에 주목하는 이유다. 그는 상업영화 감독임을 자임하고,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상업영화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적 시선을 꽂아넣을 줄 아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이 영화가 관객의 선택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만(정진영)이 나쁜 사람으로 설정됐는데,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 “나는 악인을 미워하는 대신 연민한다. 오죽하면 저렇게 됐을까? 사회의 책임이 있다. 정만은 약속을 어기니까 그런 의미에서 악인이다. 사람을 죽여야만 나쁜 사람인가? 그건 살인자지. 군인들은 다 살인자고. 여자의 눈으로 보면 미군이나 한국군이나 베트콩이나 모두 살인자다.” 처음으로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남성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온 데 대한 변명인가? “변명이 아니라 반성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인류가 아직 안 망한 건 여성성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히스토리였는데, 이제 허스토리(herstory)를 만들어야 한다.” 1년에 한 편씩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무엇에 쫓기고 있는 것 같다. 좀 천천히 가야 하지 않을까? “내가 원래 경솔한 인간이라 계획이 없다. 마구잡이로 산다. 초조불안증 환자이고, 워커홀릭이다. 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미친 듯이 일해야 행복하다. 잘못 배운 인생이지. 내가 지금 오십인데, 육십이 되도 안 바뀔 것 같다. 으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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