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일 감독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신동일 감독
이제는 별로 떠올리지 않는 별칭이 됐지만, 신동일 감독은 분명 ‘386세대’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 속에는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채 떠도는 ‘386’들이 곧잘 나온다. 장편 데뷔작 <방문자>(2005)에서는 사회와의 소통을 포기한 채 고립된 듯 보이는 대학 강사 호준이, 27일 개봉하는 두 번째 장편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는 평범한 요리사 친구에게서 심리적 안정감과 우월감을 느끼는 외환 딜러 예준이 등장한다. “386의 한 사람으로 자기반성적인 얘기를 해 보고 싶었다”는 신 감독을 19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외환딜러·비정규직 친구 통해
관계 속에 감춰진 욕망 비춰 ‘권력의 386’에 부정적 시선
“지적해야만 지금 사회 보일 것” -영화에 386세대의 정체성이 물씬 풍긴다. “고대 87학번이다. 갓 대학에 입학한 87년은 사회 격변기였다. 감수성 예민하던 스무 살에 ‘6월 항쟁’을 겪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사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영화를 좋아해 고대 영화동아리 ‘돌빛’에 들어갔다. 사회성 짙은 영화들을 참 많이 봤다.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10기)에 들어가 연출을 공부했다. 허진호 감독이 한 기수 위, 봉준호 감독이 한 기수 아래다.” -영화 속 386들은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민주화에 헌신한 세대였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를 만들어 낸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나 또한 그 세대 사람으로서 자기반성적인 얘기를 하고 싶었다. 부정적인 것들을 지적하고 형상화해야만, 지금 사회가 보일 것 같았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두 남자의 얘기다. 예준(장현성·오른쪽 사진)은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미혼의 외환 딜러다. 친구 재문(박희순·왼쪽)은 작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요리사, 그의 아내 지숙(홍소희·가운데)은 허름한 동네 미용실 미용사다. 물과 기름처럼 다른 두 남자를 잇는 끈은 젊은 시절 군대에서 보낸 짧은 시간. 선임병이던 예준은 신병 재문에게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며 말을 놓게 하고, <철학 에세이> 같은 사회과학 서적을 권한다.
-완전히 다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만나는 설정이 재미있다.
“캐릭터 형상화에 관심이 많다. 예준은 386으로 한때 학생운동에도 간여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딜러가 됐다. 재문은 우리 시대의 평범한 서민이다. 둘은 평등한 친구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재문은 예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둘 사이엔 일종의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예준은 늘 귀찮다는 듯 재문의 전화를 받고, 재문은 그런 예준을 기다린다. 예준은 재문이 낳은 아이 이름을 ‘민중혁명’의 줄임말인 ‘민혁’으로 짓게 한다.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예준이 과거 어떤 인물이었다는 걸 보여주면서 냉소적 거리를 두고 싶었다.”
지숙이 어려운 살림을 쪼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미용 워크숍’에 참여한 사이, 예준이 재문의 집을 찾는다. ‘차를 빼달라’는 전화가 오자, 예준은 재문에게 심부름 시키듯 차 열쇠를 맡긴다. 재문이 나간 사이 ‘민혁’이가 잠에서 깨고, 예준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재문은 친구의 죄를 덮어쓰고 감옥에 간다. 평소 연정을 품어 온 지숙이 홀로 남겨지자 예준은 마음이 흔들리는 자신을 느낀다.
-영화엔 감독이 직접 개입하는 듯한 순간이 있다. 가령, 재문과 지숙은 예준에게 “빈말이라도 미안하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소리친다. 권력을 쥐었던 386들을 향한 감독의 질문으로도 읽힌다.
“그렇게 봐줬다면 고마운 일이다.(웃음) 극 중 예준도 (386들처럼) 끝내 자기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자기 고백을 할 기회가 있었지만 하지 못한다. 우리 삶에는 그런 어두운 모습들이 있다. 그래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은 그 ‘희망’의 실마리다.”
-그 희망은 예준이 아닌 재문과 지숙의 희망인데?
“…그렇다.”
-다음 작품은?
“<반두비>라는 작품이다.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이다. 반항적인 고2 여학생이 방글라데시 이주 노동자와 만나 쌓아가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내년 초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관계 속에 감춰진 욕망 비춰 ‘권력의 386’에 부정적 시선
“지적해야만 지금 사회 보일 것” -영화에 386세대의 정체성이 물씬 풍긴다. “고대 87학번이다. 갓 대학에 입학한 87년은 사회 격변기였다. 감수성 예민하던 스무 살에 ‘6월 항쟁’을 겪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사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영화를 좋아해 고대 영화동아리 ‘돌빛’에 들어갔다. 사회성 짙은 영화들을 참 많이 봤다.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10기)에 들어가 연출을 공부했다. 허진호 감독이 한 기수 위, 봉준호 감독이 한 기수 아래다.” -영화 속 386들은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민주화에 헌신한 세대였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를 만들어 낸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나 또한 그 세대 사람으로서 자기반성적인 얘기를 하고 싶었다. 부정적인 것들을 지적하고 형상화해야만, 지금 사회가 보일 것 같았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두 남자의 얘기다. 예준(장현성·오른쪽 사진)은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미혼의 외환 딜러다. 친구 재문(박희순·왼쪽)은 작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요리사, 그의 아내 지숙(홍소희·가운데)은 허름한 동네 미용실 미용사다. 물과 기름처럼 다른 두 남자를 잇는 끈은 젊은 시절 군대에서 보낸 짧은 시간. 선임병이던 예준은 신병 재문에게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며 말을 놓게 하고, <철학 에세이> 같은 사회과학 서적을 권한다.
예준(장현성·오른쪽 사진) 재문(박희순·왼쪽) 지숙(홍소희·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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