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
구로사와 감독의 일본판 ‘리어왕’
란(E 밤 11시35분)=일본이 낳은 위대한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일본 시대극으로 옮긴 작품.
늙은 영주 히데토라가 3명의 아들에게 자신의 영토를 나누어 주자, 막내아들이 형제들끼리의 우애를 믿지 말라고 충언한다. 막내아들의 걱정어린 예언은 현실이 되고, 아버지와 형제들 사이에 유혈 낭자한 싸움이 계속된다. ‘문학의 셰익스피어’처럼 ‘영화의 셰익스피어’가 되고 싶었던 구로자와는 70대의 나이에도 모든 에너지를 쏟아 <란>을 만들었다. 형제들 사이의 다툼과 광인이 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란>은 구로자와의 마지막 시대극이다. 더불어 그의 영화들 중 가장 염세적이고 비극적인 정서의 영화라 할 수 있다. <란>의 이미지는 초현실적이며 탐미적이다. 특히 집단 군무가 만들어내는 잔혹한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은 백미에 해당한다. 불타는 성을 뒤로 하고 넋을 잃고 계단을 내려오는 히데토라의 모습은 영화사를 빛낸 명장면들 중 하나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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