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 조인성·유하 감독
‘비열한 거리’ 이어 두번째 만남
조인성 “복합적 감정 어려웠다”
유하 “한국 엄숙주의에 말걸기” 유하(45)와 조인성(27). ‘종로3가와 청계천의 아황산가스가 팔할의 나를 키웠다’던 시인 영화감독과 <비열한 거리>에서 흔들리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사그라들던 조폭 ‘병두’가 신작 <쌍화점>을 들고 돌아왔다. <쌍화점>은 14세기 원나라의 정치적 압박 속에서 고립된 고려의 왕(주진모)과 그가 유일하게 믿고 사랑하는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원나라 출신 왕비(송지효)가 만들어 내는 애욕의 감정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렸다. 기대작들의 잇따른 부진으로 위기에 빠진 한국 영화계가 반전을 기대하는 연말 대작이기도 하다. “이제 막 지옥에서 벗어난 듯하다”는 유하 감독과 배우 조인성을 1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저속함과 폭력성에 말걸기를 해 온 유하 감독은 <쌍화점>에서 800년을 거슬러 오른다. “<비열한 거리>로 액션은 해봤으니까 장르 바꿔 멜로를 해보자고 인성이와 의견을 모았다. 남녀간 사랑은 익숙한 주제니까 이번엔 조금 다르게 동성애 코드를 잡았다. 고려시대 문헌을 보면, 왕이 신하들 앞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저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성리학의 지배를 받던 조선과 다른 개방적 모습에 놀랐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시도해 봤지만, 지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엄숙주의에 대해서도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유하) 왕과 홍림은 어릴 때부터 동고동락한 사이다. 어릴 때 궁에 온 홍림에게 정체성의 근원은 왕이다. 왕은 아버지이고, 스승이고, 큰형님이자 연인이다. 성불구자이자 동성애자인 왕은 홍림을 사랑한다. “부인이 있지만 사실상 홍림이 부인인 거죠.”(조인성)
그러나 원나라는 왕의 후사가 없음을 탓하며 고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 시도하고, 시해 미수 사건까지 터진다. 고심하던 왕은 후사를 위해 홍림과 왕비의 대리 합궁을 명한다. 조인성은 “홍림이 복합적 감정을 갖는 캐릭터여서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홍림은 합궁 이후 왕에 의해 규정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새 자아를 찾게 된다. 왕비에 대한 사랑과 왕에 대한 죄의식이 꿈틀거리지만, 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이란 한계를 지닌다. 그래서 홍림이라는 인물은 회색지대에 자리한다. 그런 불편한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여야 했다.”(조인성) <쌍화점>은 한자로 ‘상화(霜花)’, 서리꽃이다. 유하 감독에게 서리꽃이란 ‘찰나의 순간’을 뜻한다. 왕의 눈을 피한 둘만의 시간. 왕비는 홍림에게 쌍화떡을 건네며 “고향인 원에서는 여인들이 정인에게 이 떡을 주는 풍습이 있다”고 말한다. 고귀한 왕비는 한때의 연적이던 남자에게 소박하게 사랑의 감정을 고백한다. “서리꽃은 청춘의 이미지다. 청춘이라는 게 20대의 한 시점일 필요는 없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 지나가버리고 없는 아련한 이미지의 시간들이다. <결혼…>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전작들도 결국 청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이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말했다면, <말죽거리…>는 제도 교육의 폭력성을 통해 말한 것이고, <쌍화점>은 에로티시즘과 성 정체성으로 도구가 바뀌었을 뿐이다.”(유하) 왕은 ‘연인’ 홍림이 멀어져 간다는 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셋은 서로에 대한 애증의 감정들을 폭발시킨다. 조인성은 “고통스런 감정이었지만 끝까지 해내야 했다”며 “영화가 성공한다면 그 공은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송지효의 몫”이라고 말했다. “모든 인간에게는 비루함과 죄의식, 애욕이 뒤엉킨 감정들이 있고, 그런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였을 때 관객들이 얻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유하) 그래서 영화는 감독이 10여년 전 써내려간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독한 마음의 열병/ 나 그때 한여름날의 승냥이처럼 우우거렸네/ 욕정이 없었다면 생도 없었으리”(<세운상가 키드의 사랑1> 중에서)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조인성 “복합적 감정 어려웠다”
유하 “한국 엄숙주의에 말걸기” 유하(45)와 조인성(27). ‘종로3가와 청계천의 아황산가스가 팔할의 나를 키웠다’던 시인 영화감독과 <비열한 거리>에서 흔들리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사그라들던 조폭 ‘병두’가 신작 <쌍화점>을 들고 돌아왔다. <쌍화점>은 14세기 원나라의 정치적 압박 속에서 고립된 고려의 왕(주진모)과 그가 유일하게 믿고 사랑하는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원나라 출신 왕비(송지효)가 만들어 내는 애욕의 감정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렸다. 기대작들의 잇따른 부진으로 위기에 빠진 한국 영화계가 반전을 기대하는 연말 대작이기도 하다. “이제 막 지옥에서 벗어난 듯하다”는 유하 감독과 배우 조인성을 1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저속함과 폭력성에 말걸기를 해 온 유하 감독은 <쌍화점>에서 800년을 거슬러 오른다. “<비열한 거리>로 액션은 해봤으니까 장르 바꿔 멜로를 해보자고 인성이와 의견을 모았다. 남녀간 사랑은 익숙한 주제니까 이번엔 조금 다르게 동성애 코드를 잡았다. 고려시대 문헌을 보면, 왕이 신하들 앞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저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성리학의 지배를 받던 조선과 다른 개방적 모습에 놀랐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시도해 봤지만, 지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엄숙주의에 대해서도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유하) 왕과 홍림은 어릴 때부터 동고동락한 사이다. 어릴 때 궁에 온 홍림에게 정체성의 근원은 왕이다. 왕은 아버지이고, 스승이고, 큰형님이자 연인이다. 성불구자이자 동성애자인 왕은 홍림을 사랑한다. “부인이 있지만 사실상 홍림이 부인인 거죠.”(조인성)
그러나 원나라는 왕의 후사가 없음을 탓하며 고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 시도하고, 시해 미수 사건까지 터진다. 고심하던 왕은 후사를 위해 홍림과 왕비의 대리 합궁을 명한다. 조인성은 “홍림이 복합적 감정을 갖는 캐릭터여서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홍림은 합궁 이후 왕에 의해 규정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새 자아를 찾게 된다. 왕비에 대한 사랑과 왕에 대한 죄의식이 꿈틀거리지만, 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분이란 한계를 지닌다. 그래서 홍림이라는 인물은 회색지대에 자리한다. 그런 불편한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여야 했다.”(조인성) <쌍화점>은 한자로 ‘상화(霜花)’, 서리꽃이다. 유하 감독에게 서리꽃이란 ‘찰나의 순간’을 뜻한다. 왕의 눈을 피한 둘만의 시간. 왕비는 홍림에게 쌍화떡을 건네며 “고향인 원에서는 여인들이 정인에게 이 떡을 주는 풍습이 있다”고 말한다. 고귀한 왕비는 한때의 연적이던 남자에게 소박하게 사랑의 감정을 고백한다. “서리꽃은 청춘의 이미지다. 청춘이라는 게 20대의 한 시점일 필요는 없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 지나가버리고 없는 아련한 이미지의 시간들이다. <결혼…>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전작들도 결국 청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이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말했다면, <말죽거리…>는 제도 교육의 폭력성을 통해 말한 것이고, <쌍화점>은 에로티시즘과 성 정체성으로 도구가 바뀌었을 뿐이다.”(유하) 왕은 ‘연인’ 홍림이 멀어져 간다는 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셋은 서로에 대한 애증의 감정들을 폭발시킨다. 조인성은 “고통스런 감정이었지만 끝까지 해내야 했다”며 “영화가 성공한다면 그 공은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송지효의 몫”이라고 말했다. “모든 인간에게는 비루함과 죄의식, 애욕이 뒤엉킨 감정들이 있고, 그런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였을 때 관객들이 얻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유하) 그래서 영화는 감독이 10여년 전 써내려간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독한 마음의 열병/ 나 그때 한여름날의 승냥이처럼 우우거렸네/ 욕정이 없었다면 생도 없었으리”(<세운상가 키드의 사랑1> 중에서)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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