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애프터 리딩>
26일 개봉 ‘번 애프터 리딩’
코언 형제(제작 조엘 코언, 감독 이선 코언)가 자신들의 장기인 스크루볼 코미디로 돌아왔다. 그들의 새 영화 <번 애프터 리딩>은 뜻밖의 인물들이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웃지 못할(그러나 보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웃긴) 해프닝을 벌이는 이야기다. 복잡한 듯하지만 단순한 구조로 잘 짜여 있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리한 영화다.
CIA 엑스파일·불륜 ‘치부’ 통해 미 사회 주류가치 희화화
핏-클루니 찰떡궁합 단순한 플롯서 강력한 흡인력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섬뜩한 사이코패스의 살인 행각을 통해 미국 사회의 병리 현상을 파헤쳤던 코언 형제는 이 영화에서 가족과 국가 안보라는 미국 사회 주류 가치에 대놓고 침을 뱉는다. 시아이에이(CIA: 미국 중앙정보국)는 시민이 죽든 말든 개의치 않고 사건을 은폐하는 데만 급급하며, 등장하는 모든 부부 관계는 불륜으로 위태롭다. 영화는 ‘구글 어스’가 버지니아 랭글리에 있는 시아이에이 사무실로 좁혀 들어가면서 시작한다. 카메라가 머문 곳은 시아이에이 요원 오스본(존 말코비치)의 얼굴. 그는 알코올 중독을 빌미로 좌천당할 위기에 빠지자 다혈질 성격을 참지 못하고 사표를 던지고 만다. 그리고 ‘3급 비밀’을 취급한 기억을 되살려 회고록을 집필하려고 한다. 이에 대한 아내 케이티(틸다 스윈튼)의 반응은 말이 필요 없이 “푸하하”다. 평소 남편을 깔보던 케이티는 직장을 때려치운 남편이 의사인 자신에게 빌붙을까봐 이혼 소송을 준비한다. 불륜 혹은 혼외정사는 이 영화를 끌고 가는 가장 중요한 플롯 중 하나다. 오스본의 회고록 파일이 담긴 시디가 헬스클럽의 ‘덜떨어진’ 운동 코치 채드(브래드 핏)와 린다(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손에 들어간 것은 케이티가 이혼 소송을 준비하면서 오스본의 물건을 마구 뒤졌기 때문이다. 케이티는 연방 경찰관 해리(조지 클루니)와 불륜 관계이고, 해리는 인터넷 ‘즉석 만남’으로 린다를 만나 몇 번 같이 잤다. 린다는 성형 수술비를 마련하고자 읽고 버려야 할(‘번 애프터 리딩’해야 할) 시디를 미끼로 위험한 도박을 시작한다. 모든 인물들은 회고록 파일과 불륜으로 뒤엉켜 있다. 불륜은 등장인물들의 치부이고 회고록 파일은 미국 사회의 치부인데, 은폐돼야 하는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코언 형제가 쉬어가는 마음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가 생각보다 강한 흡인력을 갖게 된 것은 캐릭터와 배우들의 찰떡궁합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디테일을 최대한 살려 캐릭터의 개성을 확보하는 코언 형제의 재주와 배우들의 재능이 행복하게 손잡는다. 특히 브래드 핏은 가장 뜻밖의 캐릭터를 선보이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이어 ‘팔색조 연기’에 물이 올랐음을 증명한다.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연방 머리 흔들고 엽기 춤을 추는 채드는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인물이다. 모두가 명확한 자기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데 반해 채드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 줄도 모르고 무뇌아 수준의 행동을 일삼다가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다. 타고난 바람둥이로서 체력 관리를 위해 매일 조깅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해리 역의 조지 클루니, 아내에게 버림받고서도 “나 아직 안 죽었다”고 외치는 신경질적인 사나이 오스본 역의 존 말코비치, 운동 코치지만 운동 아닌 전신 성형을 해서 잘생긴 데이트 상대를 만나는 게 꿈인 노처녀 린다 역의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는 명품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들이 모두 살짝 미쳐 있다는 것이다. “이 일로 뭘 배웠나?”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시아이에이 간부는 부하에게 이렇게 묻는다. 영화 <노인을 위한…>이 끝나갈 무렵, 늙은 보안관(토미 리 존스)이 알듯말듯한 간밤의 꿈에 빗대어 악의 세력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무력감을 토로하던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자기 치유 능력을 상실한 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코언 형제 식의 가벼운 탄식인 셈이다. 이 영화가 코언 형제의 필모그래피에서 첫손에 꼽히지는 않을지라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26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유피아이 코리아 제공
핏-클루니 찰떡궁합 단순한 플롯서 강력한 흡인력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섬뜩한 사이코패스의 살인 행각을 통해 미국 사회의 병리 현상을 파헤쳤던 코언 형제는 이 영화에서 가족과 국가 안보라는 미국 사회 주류 가치에 대놓고 침을 뱉는다. 시아이에이(CIA: 미국 중앙정보국)는 시민이 죽든 말든 개의치 않고 사건을 은폐하는 데만 급급하며, 등장하는 모든 부부 관계는 불륜으로 위태롭다. 영화는 ‘구글 어스’가 버지니아 랭글리에 있는 시아이에이 사무실로 좁혀 들어가면서 시작한다. 카메라가 머문 곳은 시아이에이 요원 오스본(존 말코비치)의 얼굴. 그는 알코올 중독을 빌미로 좌천당할 위기에 빠지자 다혈질 성격을 참지 못하고 사표를 던지고 만다. 그리고 ‘3급 비밀’을 취급한 기억을 되살려 회고록을 집필하려고 한다. 이에 대한 아내 케이티(틸다 스윈튼)의 반응은 말이 필요 없이 “푸하하”다. 평소 남편을 깔보던 케이티는 직장을 때려치운 남편이 의사인 자신에게 빌붙을까봐 이혼 소송을 준비한다. 불륜 혹은 혼외정사는 이 영화를 끌고 가는 가장 중요한 플롯 중 하나다. 오스본의 회고록 파일이 담긴 시디가 헬스클럽의 ‘덜떨어진’ 운동 코치 채드(브래드 핏)와 린다(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손에 들어간 것은 케이티가 이혼 소송을 준비하면서 오스본의 물건을 마구 뒤졌기 때문이다. 케이티는 연방 경찰관 해리(조지 클루니)와 불륜 관계이고, 해리는 인터넷 ‘즉석 만남’으로 린다를 만나 몇 번 같이 잤다. 린다는 성형 수술비를 마련하고자 읽고 버려야 할(‘번 애프터 리딩’해야 할) 시디를 미끼로 위험한 도박을 시작한다. 모든 인물들은 회고록 파일과 불륜으로 뒤엉켜 있다. 불륜은 등장인물들의 치부이고 회고록 파일은 미국 사회의 치부인데, 은폐돼야 하는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코언 형제가 쉬어가는 마음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가 생각보다 강한 흡인력을 갖게 된 것은 캐릭터와 배우들의 찰떡궁합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디테일을 최대한 살려 캐릭터의 개성을 확보하는 코언 형제의 재주와 배우들의 재능이 행복하게 손잡는다. 특히 브래드 핏은 가장 뜻밖의 캐릭터를 선보이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이어 ‘팔색조 연기’에 물이 올랐음을 증명한다.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연방 머리 흔들고 엽기 춤을 추는 채드는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인물이다. 모두가 명확한 자기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데 반해 채드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 줄도 모르고 무뇌아 수준의 행동을 일삼다가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다. 타고난 바람둥이로서 체력 관리를 위해 매일 조깅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해리 역의 조지 클루니, 아내에게 버림받고서도 “나 아직 안 죽었다”고 외치는 신경질적인 사나이 오스본 역의 존 말코비치, 운동 코치지만 운동 아닌 전신 성형을 해서 잘생긴 데이트 상대를 만나는 게 꿈인 노처녀 린다 역의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는 명품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들이 모두 살짝 미쳐 있다는 것이다. “이 일로 뭘 배웠나?”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시아이에이 간부는 부하에게 이렇게 묻는다. 영화 <노인을 위한…>이 끝나갈 무렵, 늙은 보안관(토미 리 존스)이 알듯말듯한 간밤의 꿈에 빗대어 악의 세력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무력감을 토로하던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자기 치유 능력을 상실한 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코언 형제 식의 가벼운 탄식인 셈이다. 이 영화가 코언 형제의 필모그래피에서 첫손에 꼽히지는 않을지라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26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유피아이 코리아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