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컬러스 케이지 ‘노잉’
니컬러스 케이지 ‘노잉’
출발은 영락없는 재난 영화다. 몸서리쳐질 정도로 사실적인 대형사고 장면도 여러 차례 나온다. 여기에 미래의 대재앙을 예언한 소녀의 비밀이 맞물리면서 미스터리 요소까지 더해진다. 딱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할리우드 공식에서 크게 벗어날 것 없는 미스터리 재난 블록버스터다. 그런데 <노잉>에는 변주가 있어 흥미롭다. 이런 부류 영화의 문법을 비껴가는 몇몇 지점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존재감을 드러낸다.
천체물리학 교수 존 코슬러(니컬러스 케이지)는 초등학생 아들이 가져온 종이 한 장을 보게 된다. 거기엔 알 수 없는 숫자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종이는 50년 전 아이들이 땅에 묻은 타임캡슐에서 나온 것. 존은 일부 숫자의 조합이 9·11 테러의 날짜와 사망자 수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한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숫자들을 풀어보니, 놀랍게도 지난 50년간 벌어진 대재난의 날짜·사망자 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에 따른다면 앞으로 닥칠 재난은 세 건. 존은 눈앞에서 벌어진 비행기 추락사고와 지하철 탈선사고를 잇따라 겪으며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종이가 예언한 마지막 대재앙을 막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노잉>이 여느 재난 영화와 다른 점은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 또렷해진다. 영화는 주인공의 초인적 능력이나 인류애적 희생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쪽으로 흐르지 않는다. 대신 이식된 건, 영웅주의나 가족주의로도 결코 넘을 수 없는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이는 끝내 영화가 출발과 너무도 동떨어진 결말로 치닫게 만든다. 영화에 대한 호오가 극명하게 갈린다면 바로 이 지점 때문일 터다. <크로우> <아이, 로봇>의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 15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영화사 숲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