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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건만…

등록 2009-05-10 18:41

다큐멘터리 ‘길’
다큐멘터리 ‘길’
다큐멘터리 ‘길’
평택 대추리 마을 마지막 봄의 기록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미군 부대 이전을 위해 푸른 논을 갈아엎고 철조망을 둘러친 평택 대추리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길>은 이제는 지도에서 사라진 평택 대추리 마을에서 마지막 봄을 맞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큐멘터리 집단 ‘푸른영상’의 김준호 감독은 4대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방효태 할아버지에게 앵글을 맞춘다. 방 할아버지는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법을 몸으로 배워 알고 있는 타고난 농사꾼이다. 자칫 뻔한 내용으로 전락하기 쉬운 다큐가 파닥파닥 살아 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방 할아버지 덕분이다. 가만히 있어도 웃는 것처럼 보이는 정겨운 얼굴, 느릿느릿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말솜씨, 주먹으로 사과를 내리쳐 쪼개는 유머, 노동으로 단련된 근육까지. 그는 자연에서 배운 순리의 언어로 말한다. “이게 다 피(잡초)여. 주인네는 베(벼)가 주인넨데, 나그네가 들어와서 전부 차지하는겨.”


다큐멘터리 ‘길’
다큐멘터리 ‘길’
그는 “없는 법을 만들어서 우리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며 “국민을 개만도 취급 안 하는 정부”라고 분노하면서도 쫓겨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농작물을 돌본다. 방 할아버지를 포함한 주민들은 예정된 운명을 비감하면서 운동회를 열고, 935일 동안의 촛불행사를 이어간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는)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마지막 촛불행사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아프다.

이 다큐는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긴 채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시대 모든 이웃들을 달래는 슬픈 노래이기도 하다. 소리 높여 주장하지 않지만 울림이 크다. 방효태 할아버지는 지금 어떤 건물의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14일 서울 명동 인디스페이스(옛 중앙극장) 단독 개봉. 공동체 상영 문의 (02)337-2135.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시네마 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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