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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소소하지만 위대한 소통의 기록

등록 2009-05-10 19:30

정재영+정려원 ‘김씨 표류기’
정재영+정려원 ‘김씨 표류기’
정재영+정려원 ‘김씨 표류기’
He 직장에서 잘렸다. 끌어다 쓴 사채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여자친구에게도 차였다.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죽을 복도 없나 보다. 눈을 떠 보니 밤섬이다. 이번엔 나무에 목을 맨다. 결정적인 순간, 배가 아파온다. 엉덩이를 까고 한바탕 쏟아내는데, 고개를 드니 샐비어 꽃이 흐드러져 있다. 꽃을 따서 입으로 가져간다. 눈물이 날 만큼 달콤하다. 허겁지겁 꿀을 따먹다 보니 어느새 진짜 눈물이 흐른다. 그래, 일단 살아보자. 남자 김씨(정재영)의 밤섬 표류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She 이마에 있는 흉터가 싫었다. 사람들 만나기가 무서웠다.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 게 몇 년인지. 인터넷에선 모든 게 가능하다. 누군가의 예쁜 얼굴 사진을 퍼다 올려놓은 미니홈피엔 친구들이 넘친다. 밤에는 망원렌즈로 달 사진을 찍는다. 낮에는 절대 커튼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낮에도 창밖을 내다볼 때가 있다. 사람들이 싹 사라지는 민방위훈련 때다. 사이렌이 울리고 망원렌즈로 세상을 관찰하는데, 밤섬의 그 남자가 들어온다. 여자 김씨(정려원)의 마음은 그렇게 바깥을 향하기 시작한다.

밤섬의 남자와 방안의 여자가
서로에게 건네는 ‘희망의 신호’

극한 고독에 표류하는 현대인
서로 통하고 싶어하는 이야기

■ 김씨 표류기 현대인의 고독. 세상이 유토피아로 바뀌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반복될 예술작품 소재다. 영화 <김씨 표류기>는 고독한 두 남녀의 극한 상황에서 출발한다. 외부요인에 의해 물리적으로 고립된 남자는 소통이 차단되자 혼자만의 삶을 개척한다. 내부요인에 의해 스스로 고립된 여자는 소통을 차단하고 혼자만의 세계로 숨어든다. 타의든 자의든,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밤섬이든 방 안이든, 두 김씨는 극심한 고독 속에 표류하는 현대인의 삶을 상징한다.

■ 김씨 소통기 고독의 치료약은 역시 소통이다. 두 김씨의 소통은 미미한 데서부터 시작한다. 남자가 모래사장에 무심코 써놓은 ‘HELLO’를 보고 여자는 ‘HELLO’라 적은 쪽지를 유리병에 넣어 밤섬에 던진다. 이를 확인한 남자는 ‘HOW ARE YOU?’라고 쓰고, 여자는 ‘FINE, THANK YOU. AND YOU?’라는 쪽지를 던진다. 사람들이 아무 느낌 없이 기계적으로 내뱉는 인사말이 이들에겐 가슴을 파고드는 소통의 언어가 된다. 영화는 두 김씨의 소소하지만 위대한 소통의 기록에 다름 아니다.

이해준 감독은 “수많은 안부인사와 흔해빠진 자기소개 같은 말들에 우리의 의지와 진심은 과연 얼마만큼 담겨 있는 건지 문득 궁금해져서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며 “<김씨 표류기>는 소통 자체보다는 소통 의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그랬듯 이 감독은 끝내 희망을 얘기한다. 영화 보는 내내 웃고 울고 가슴 졸이다 보면 어느새 두 김씨와 소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14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반짝반짝영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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