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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정보통 가족’ 독자와 함께 늙어가고 싶어요

등록 2009-05-12 22:39수정 2009-05-12 22:40

‘비빔툰 10돌’
‘비빔툰 10돌’
한국 소시민 아이콘으로 ‘자리’
“느끼는 대로 천천히 나아갈 것”




■ ‘비빔툰 10돌’ 홍승우 작가를 만나다

강산이 변했다. <한겨레>에서 만화 <비빔툰>이 첫선을 보인 게 1999년 5월10일이니,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비빔툰>은 <한겨레>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고, ‘정보통’ 가족은 대한민국 소시민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작가 홍승우(41)씨는 “한겨레를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날 만화가 홍승우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한겨레>와의 인연은 좀더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뒤 몇몇 잡지에 만화를 그리던 그에게 당시 <동아일보>에 <도날드 닭>을 연재하던 친구 이우일이 제안을 해왔다. 1998년 4월 창간하는 생활정보 신문 <한겨레리빙>에 만화를 그려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정보통 사람들>이었고, 훗날 <비빔툰>의 정보통 가족은 그렇게 탄생했다. 정보통, 생활미(아내)라는 이름도 생활정보 신문의 특성에서 따온 것이다.

“만화를 주 5회 그려야 했으니, 소재 고갈이 걱정됐어요. 그래서 아예 내 얘기를 소재 삼기로 한 거죠.”

‘비빔툰 10돌’
‘비빔툰 10돌’

<정보통 사람들>의 첫 회는 부부가 신혼여행을 가는 이야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활미가 임신했고, 아들 다운이가 태어났다. 실제로 홍씨의 아들 동훈(11)이도 그해 5월 태어났다. 다운이는 동훈이의 분신인 셈이다.

<정보통 사람들>이 한창 인기를 얻을 무렵, 이번엔 <한겨레>로부터 제안이 왔다. 새로 만드는 섹션 신문에 만화를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비빔툰>이란 제목으로 따로 연재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주인공이 따로 없는 시사만화로 콘셉트를 잡았다. 그런데 반응이 영 아니었다. “이건 뭐냐? 재미도 없고, 날카로움도 없고. 그만둬라!” 따위의 혹평들이 줄을 이었다.

“당황스러웠죠. <정보통 사람들> 때는 ‘공감하며 잘 보고 있다’는 팬레터들이 쏟아졌는데, <비빔툰>에는 정반대의 반응이 쏟아졌으니까요. 내가 생각해도 당시 <비빔툰>은 뭔가 어정쩡한 느낌이었어요. 시사만화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또 내가 갈 길이 뭔지 확실히 알게 됐죠.”

홍승우 작가 가족이 경기도 파주 자택에서 포즈를 취했다. 아들 동훈(왼쪽서 두번째)이와 딸 유나(왼쪽서 세번째)는 만화 속 다운이와 겨운이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이들이 키우는 강아지도 만화 속 ‘정비글’로 등장하는 점이 재미있다.
홍승우 작가 가족이 경기도 파주 자택에서 포즈를 취했다. 아들 동훈(왼쪽서 두번째)이와 딸 유나(왼쪽서 세번째)는 만화 속 다운이와 겨운이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이들이 키우는 강아지도 만화 속 ‘정비글’로 등장하는 점이 재미있다.

얼마 뒤 <한겨레리빙>이 폐간됐다. 홍씨는 연재가 중단된 <정보통 사람들>의 정보통 가족을 <비빔툰>으로 이사시켰다. 곧 팬레터들이 다시 오기 시작했다.

“정보통이 출근하는데 기저귀 찬 다운이가 울며 ‘아빠, 가지 마~’ 하고 다리를 붙잡는 만화를 그렸어요. 사실 너무 평범해서 재미없어할 줄 알았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내가 오늘 출근할 때 그랬다. 그 장면 너무 좋더라’는 식의 엽서와 리플들이 몰려들더라고요.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2000년 9월 다운이 동생 겨운이도 태어났다. 실제 홍씨의 딸 유나(9)는 그보다 한 달 앞서 태어났다. 겨운이 인기도 다운이 못지않았다. 홍씨는 2001년 <비빔툰>으로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이듬해엔 <비빔툰> 단행본으로 한국출판 만화대상 출판상을 수상했다.

그러다 2002년 즈음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왔다. 스스로 일상이 지루하다고 느껴지니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매일 비슷한 내용만 반복하는 건 아닌지 하는 자괴감과 독자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의욕이 충만해지면 다시 시작하리라 마음먹었다. 신문사에 사정을 얘기했더니 일곱 달의 휴식을 허락했다.

“다른 신문사에선 이런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한겨레>니까 가능했죠. 얼마나 고맙던지. 독자 여러분께 기한을 밝히지 않은 채 ‘잠시 쉬었다 오겠습니다’라고 하니 다음날 ‘그만두면 안 된다. 꼭 돌아와야 한다’는 이메일이 꽉 차서 넘칠 정도로 많이 왔어요. 혼자라서 외롭고 고독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슬럼프에 빠진 건데, 독자들 이메일을 받고서야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 돌아올 힘을 얻었죠.”

다운이가 이렇게 컸어요
다운이가 이렇게 컸어요
그는 쉬는 동안 수채화 그림 동화책을 냈고,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과학만화도 그렸다. 사람들을 실컷 만나 얘기를 듣고, 일상의 소재들을 수첩에 빼곡하게 적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일곱 달 뒤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주 4~5회 그리던 것을 주 3회로 줄였다. 압박감과 고뇌에서 벗어나 좀더 나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였다. 2005년 9월부터는 아예 주 1회로 줄였다. 과학만화를 좀더 해보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비빔툰>을 길게 가는 만화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작업을 하더라도 <비빔툰>만은 놓지 말아야겠다는 고집이 생기더라고요. 다운이와 겨운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한겨레>가 받아주는 한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려면 우선 템포부터 늦춰야겠더라고요.”

<비빔툰>에는 성장이 있다. 아이들은 크고, 정보통과 생활미는 늙어갈 것이다. 홍씨는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만화로 표현해보고 싶다고 했다.

“욕심을 버리고 바람 부는 대로 느끼는 대로 천천히 가는 만화를 그릴 겁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장수’가 힘든 분위기인데, <비빔툰>은 20년이고 30년이고 장수하는 만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저 또한 인내심을 갖고 계속 그릴 테니, 독자 여러분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주셨으면 해요.”

파주/글·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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