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김윤석
“‘추격자’? 소프트웨어가 달라
이번엔 덜어내는 연기…더 힘들어”
이번엔 덜어내는 연기…더 힘들어”
‘거북이 달린다’ 김윤석
김윤석(42)은 ‘감독 같은’ 배우다. 대개의 한국 배우들이 말이 짧은 데 반해, 그는 말을 잘한다. 영화의 전반을 이해하고, 정확하고 풍부하게 설명할 줄 안다. “학창 시절 내가 연출한 작품으로 전국대학연극제 대상을 받았다”는 해명을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울 대학로 생활을 접고 부산에서 재즈 카페를 운영하면서도 지역 전교조 선생님들의 연극반에서 3년 동안 연출을 맡았다. 2000년 대학로에 돌아와서도 주로 연출부 생활을 했다. 시나리오 보는 눈이 남다를 수밖에.
영화 <거북이 달린다>의 시나리오를 읽고 이연우 감독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는 “지방색 짙은 삶에서 묻어나는 독특하고 아슬아슬한 코미디가 좋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표현하기 어려운지 아느냐”고 물었다. “조금만 삐끗해도 썰렁해질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닌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걱정과 함께. 둘은 바로 그날 영화의 무대인 충남 예산으로 향했다.
“고속철도 타고 내려가면서 대화해 보니 시나리오가 감독에게 육화돼 있더라고요. 등장인물과 에피소드가 친구들 얘기예요.” 그래서 믿음이 생겼다. “자로 잰 연출이나 화려한 카메라 움직임 같은 거 없이, 전적으로 배우에게 의존하는 영화”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봤다.
<거북이…>는 적당히 게으르고 부패한 시골 형사 조필성(김윤석)이 신창원을 연상시키는 희대의 탈주범 송기태(정경호)를 잡으려고 용쓰는 이야기다. 영화 포스터를 보거나 줄거리를 들으면 <추격자>가 떠오르지만 실은 전혀 딴판인 영화다. 그는 “하드웨어만 보면 <추격자>와 비슷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다르다”고 말했다.
<타짜>의 아귀, <천하장사 마돈나>의 아빠, <추격자>의 엄중호 등 강렬한 배역으로 스타 연기자의 자리에 오른 그는 <추격자>를 끝내고 나서 ‘빼는 연기, 덜어내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거북이…>야말로 그런 영화다.
“그동안의 제 연기에 대해, 난 듣기 싫은 말인데, 폭발력 있는 연기라고들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동안은 낮은 ‘라’에서 높은 ‘라’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갔다면, 이번 영화는 ‘도레미’ 정도에서 놀아야 했어요. 그만큼 더 힘들었죠.”
영화는 범인과의 대결, 도청 주최 소싸움 대회, 아이와의 일일교사 약속 등 세가지 에피소드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짜면서 마지막까지 팽팽함을 유지한다. 충청도 사람 특유의 능청과 여유가 빚어내는 유머는 긴장으로 뭉친 근육을 풀어준다. 예산에서 100% 촬영한 추격신은 ‘논두렁 액션’이라 칭할 만한 새로운 장면들을 여럿 선보인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브이아이피 시사 해보면 알아요. 뒤풀이 때 안 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야. 그런데 한 사람도 안 빠지고 다 왔어요. 박찬욱, 최동훈, 송강호 등과 새벽 4시까지 술 마셨어요. 박찬욱 감독은 엄지손가락 두개를 치켜들었어요. 진짜 좋다고. 조필성이 동네 친구들 동원해서 야밤에 송기태를 급습하는 장면에선 다들 뒤로 넘어가더라고요.”
연극판 얘기를 할 때 그는 가장 행복해 보였다. 극단 76의 괴짜 연출가 기국서, 연기력과 연출력을 겸비한 차세대 주자 김낙형 등이 화제에 오르자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으로 애정을 표시했다. 그에게 대학로는 마음의 고향 이상인 것처럼 보였다. 유명해지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도 대학로 후배들에게 “술을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연극 무대 출신 늦깎이 배우가 대체로 그렇듯, 김윤석도 오랜 기간 다듬어진 원석 같은 존재다. 세공의 부위와 강도에 따라 무궁무진한 변신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는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새겨져서 쉽게 달아나지 않는, 가슴에 남는 배역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11일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영화 〈거북이 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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