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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튼실했던 ‘김씨’는 왜 ‘표류’할 수밖에 없었나

등록 2009-07-05 18:57수정 2009-07-05 21:40

왼쪽부터 이해준 감독, 김무령 제작자
왼쪽부터 이해준 감독, 김무령 제작자
평단·언론 호평에도 ‘참패’
감독-제작자 이유있는 항변




올해 상반기 한국 영화의 판도를 요약하면,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역사적인 흥행몰이, <과속 스캔들>과 <7급 공무원> 등 코미디 영화의 대박, 박찬욱의 <박쥐>와 봉준호의 <마더> 등 유명 감독 화제작의 ‘평범한 성공’으로 정리할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같은 작가주의 영화나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노영석 감독의 <낮술> 등 독립영화도 선전했다.

이들 작품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감독이 아주 유명하거나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점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 범주에 들지 못한 영화들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영화판 양극화’라고 이름붙일 만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호한 지점의 영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영화가 <김씨 표류기>다. ‘반짝반짝’ 빛나는 퀴어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2006)의 환상 짝꿍인 이해준 감독과 반짝반짝영화사의 김무령 대표가 만든 이 영화는 밤섬에 갇힌 신용불량자(정재영)와 방안에 콕 파묻혀 사는 히키코모리(정려원)의 기막힌 소통을 그렸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한국 영화에 드문 마이크로의 풍경을 성취하면서 평단과 언론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흥행의 귀재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가 투자와 배급을 맡았을 만큼 잠재적인 상업성도 인정받았지만 관객 72만6천명(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으로 참패하고 말았다. 차승재 싸이더스 전 대표는 “<김씨 표류기> 같은 영화마저 잘 안되는 시대가 됐다”고 혀를 찼다. 흔히들 한국 영화의 위기를 말할 때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좋은 영화를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영화도 외면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영화 생태계가 건강하려면, 큰 영화부터 중간 규모의 영화, 작은 영화까지 골고루 적절한 ‘파이’를 차지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다 보면 현단계 한국 영화가 맞닥뜨린 현실과 숙제의 실마리가 잡힐 것 같았다. 이해준 감독과 김무령 대표가 호출에 응했다. 이들은 “이건 뭐 죽은 자식 ×× 만지기도 아니고”라며 멋쩍어하면서도 성심성의껏 아픈 기억을 되살려줬다.


튼실했던 ‘김씨’는 왜 ‘표류’할 수밖에 없었나
튼실했던 ‘김씨’는 왜 ‘표류’할 수밖에 없었나
-총제작비가 50억원(순제작비는 32억)인데, 손익분기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흥행 성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김무령) “경쟁 영화가 너무 많았다. 그래도 영화가 재미있으니까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힘에 부쳤다. 관객들이 이야기의 힘 대신, 편하게 2시간 즐기다 나오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급 시스템도 그런 영화가 잘될 수밖에 없는 쪽으로 바뀌는 것 같다. 이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 고민이 된다. 점점 작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포스터나 제목, 마케팅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이해준) “물론 나도 포스터 보면서 잘 빠졌다 싶을 만큼 만족하지는 않지만, 영화가 흥행했다면 포스터 얘기 했을까? 본질적인 건 영화다. 제목도 이야기를 다 담기에는 밋밋하거나 촌스럽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제목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이 영화를 잘 표현해주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흥행이 안돼서 제목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판단은 그랬다.”

-<추격자>의 투자자였던 벤티지홀딩스의 정의석 전 대표도 <김씨 표류기> 시나리오에 눈독을 들였다고 하더라. 어떻게 해서 시네마서비스로 가게 됐나?

(김) “물론 씨제이엔터테인먼트 등에 다 들렀다. 대부분 예산을 10억원 정도 깎자고 했다. 고민하고 있을 때 정재영씨가 찍고 있던 <강철중> <신기전>을 통해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 감독님이 이 영화를 알게 됐다. 이틀 만에 계약했다. 워낙 판단이 빠른 분이라는 거 알고 있었지만 새삼 놀랐다. 편집본 모니터 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됐다. 바람직한 투자자의 모습이랄까. 이런 영화도 쉽게 투자자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거봐라 이런 영화 안되잖아’라는 기존 생각을 더 강화해준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투자자가 봤을 때 ‘이거 괜찮을까’ 하는 작품들이 영화의 새 길을 찾는 영화들인데,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이) “나도 그 부분이 제일 안타깝다. 물론 거품 빼야겠지만, 영화적 판단 이전에 무조건 10억 깎자고 했다. 여자가 꼭 히키코모리여야 하느냐, 여자가 화상 흉터가 있는데, 꼭 있어야 하냐는 등 터무니없는 얘기도 들었다. 한 손에 돈을 들고서, 이 영화를 왜 하려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요구를 하니까 굉장히 갈등이 됐다. 투자 받고 영화를 만들려면 원래 갖고 있는 모양새를 와해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영화를 고치거나 품질을 보장받을 수 없는 돈으로 찍거나 둘 중의 하나였는데, 유일하게 영화적 판단으로 투자하셨던 분이 강 감독님이었다.”

-배급은 어땠나. 극장들이 외면했다고 하던데.


〈김씨 표류기〉
〈김씨 표류기〉
(김) “프린트는 250벌 떴다. 개봉 3주차였던 <7급 공무원>보다도 100개나 적었다. 시작부터 힘이 달렸다. 극장들은 자기들이 배급하는 영화들이 있었다. 씨제이는 <박쥐> <스타트랙> <마더>, 롯데는 <7급 공무원> <터미네이터 4>, 메가박스는 <천사와 악마>가 있었다. 극장 가보면 우리 영화는 제일 작은 관이었다. 시네마서비스 담당 이사는 화병에 걸렸을 정도로 마음 상했을 거다. 극장들이 받아주지 않아서 괴로워했다. 약속하고 갔는데도 가보면 자리에 없고.”

(이) “문제는 정도껏 해야 한다는 거다. 자기 영화라고 4~5개관에 푸는 건 심했다.”

-<김씨 표류기>가 희망을 이야기하듯, 두 분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나. 다음 영화 계획은?

(김) “영화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희망 얘기 하면서 난 이렇게 희망이 없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요즘 한 친구가 제작사를 만들어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투자사와 제작사의 부율(수익분배율)이 8대 1, 9대 1이라고 한다. 작은 영화사들이 꾸준히 만들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

(이) “나는 오히려 더 오기가 생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 ‘알았어 알았어, 두고보자.’ 작가로서는 더 큰 자산이 생긴 것 같다. 지치지 말고 지칠 시간에 더 열심히 다음 영화 준비해야지. 안타까운 것은 제작자의 입지가 많이 좁아졌다는 점이다. 그게 지금 한국 영화의 큰 불행인 것 같다.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를 타파하고 순환구조를 만들려면 제작사들이 살아야 한다. 제작사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게 감독으로서도 안타깝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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