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털 대통령’ 유쾌하게 뽑아내다
‘굿모닝 프레지던트’ 속 비현실 정치
로또에, 사랑에, 가족에 흔들려도
인간다움 잃지 않는 ‘희망 대통령’
로또에, 사랑에, 가족에 흔들려도
인간다움 잃지 않는 ‘희망 대통령’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첫선을 보인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영화다. 정치영화가 드문 한국 영화계에서 정치를, 그것도 코미디의 형식을 빌려 비틀고 있다는 점이 그렇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세부 묘사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현실의 결핍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승화시켜 행복한 꿈을 꾸게 하는 ‘정치 판타지’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영화는 청와대라는 구중궁궐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타당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출출할 때 라면을 찾는다든가, 일과 시간 뒤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며 눈물을 훌쩍거리는 모습은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주민들이 평범하고 인간적인 고민에 빠지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영화에는 세 명의 대통령이 나온다. 로또 복권 발행 기념행사에서 장관들과 함께 로또를 긁었다가 1등에 당첨된 뒤 갈등하는 김정호 대통령(이순재), 아버지를 살리려면 대통령의 신장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낯선 청년(박해일)을 만나 고민에 빠지는 차지욱 대통령(장동건), 남편의 부동산이 발각돼 탄핵 위기에 몰린 최초의 여성 대통령 한경자(고두심). 평생 민주화 운동에 몸을 바쳐 가진 게 별로 없는 김정호 대통령은 240억원이나 되는 로또 당첨금의 유혹에 흔들리고, 아내와 사별한 뒤 홀로 아들을 키우는 차지욱 대통령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한 여자(한채영) 앞에서 흔들린다. 한경자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살리려고 이혼을 자처하는 남편 앞에서 흔들린다. 세 대통령은 모두 비현실적인, 그러나 인간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국민들의 마음을 산다.
다소 도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어떤 장면에선 뭉클함이 느껴질 정도의 진정성이 묻어나기도 한다. 시인 신동엽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는 꿈을 꿨다면, 영화감독 장진은 생면부지의 남에게 콩팥 하나를 떼어주는 인간적인 대통령을 꿈꾼다.
자주적인 국방 노선에 여야가 초당적인 협력을 하는 풍경 역시 감독의 희망사항이다. 동해상에서의 일본의 도발에 북한이 무력으로 맞서고, 미국이 일본 편을 들며 한국을 압박하는데, 새한국당의 차지욱 대통령은 북한을 믿어보자며 미국의 공해 개방 압력을 거부하고, 끝내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8일 오후 시사회 뒤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장 감독은 “한 대통령의 취임 전과 임기 당시, 퇴임 후의 모습은 물론, 취임 전의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퇴임한 대통령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오락영화의 틀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재미까지만 가려 했으며, (정치적인 면에서) 더 깊이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두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데 대해서는 “그분들이 영화를 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슬프고 속상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박수받으며 퇴임한 대통령이 한 명도 없는 청와대의 불행한 역사를 치유할 만한 유쾌한 코미디다. 22일 개봉.
부산/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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