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를 닮은 영화’ 부산을 달구다
베일 벗은 평론가들의 감독 데뷔작
정성일과 김소영(감독명 김정). 한국을 대표하는 두 영화평론가의 감독 데뷔는 14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 관심사의 하나다. 특히 현학적이고 화려한 글쓰기로 유명한 정 감독의 경우 많은 영화인들이 “자기는 어떻게 영화 만드나 보자”며 벼르던 상태여서, 티켓이 조기 매진되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두 영화를 본 사람들의 결론은 역시 “영화는 감독을 닮는다”는 것이다. 정성일을 닮은 정성일의 영화 <카페 느와르>와 김정을 닮은 김정의 영화 <경>은 대단히 학구적인 영화들이지만, 뜻밖의 상황과 대사가 이어지는 화면은 흥미진진하다. 전통적인 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들은 지나치게 관념적인 영화들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색다른 영화의 풍경을 개척하는 의미 있는 시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두 영화 모두 아직 개봉 날짜가 잡히지는 않았다. ■ 정성일 ‘카페 느와르’ 문어체 대사에 파격적 형식
“교양의 영화도 있을 수 있다” 교양의 영화 <카페 느와르> 정성일 감독은 27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50대가 되어서야 감독으로 데뷔하게 됐지만, 영화 만들기는 그의 필생의 숙제였다. <카페 느와르>는 유부녀(문정희)를 사랑하는 주인공 영수(신하균)가 유부녀의 남편을 죽이려다 실패하는 전반부와 또다른 사랑을 찾기 위해 청계천을 배회하는 후반부로 이뤄져 있다. 영화는 영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영수가 만나는 여자들 네 명의 사연이 동심원처럼 펼쳐졌다 수렴됐다를 반복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문어체 혹은 번역투 대사다. 영수 역의 신하균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걸 어떻게 연기하나 걱정했는데, 정 감독을 만나보고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뒤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문어체 대사를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은 이 영화를 “교양의 영화”로 봐달라는 정 감독의 바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도입부에 한자 자막으로 ‘세계소년소녀 교양문학전집’이라고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 감독은 “직관의 영화, 감정의 영화, 오락의 영화가 있듯이 교양의 영화도 있을 수 있다”며 “영화에 관한 한 우리 시대 지성들이 대중들에게 굴복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정성일, 김정 감독.
“질문하는 영화 만들고 싶었다” 탐구하는 영화 <경>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인 김정 감독은 영화감독 사관학교인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장편 극영화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여성사 다큐멘터리 3부작을 만든 바 있으며, <질주환상>(2004) 등 여러 편의 단편 극영화를 연출했다. 영화 <경>은 영어 제목 ‘뷰파인더’를 함께 읽어야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카메라, 인터넷 등의 각종 매체를 통해 들여다본다는 의미다. 영화는 카메라와 컴퓨터, 메신저, 구글어스 등의 매체를 등장시켜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는다. 김 감독은 “이 영화는 질문의 영화”라며 “존재의 심연 같은 삶의 큰 구멍, 채워질 수 없는 구멍을 다루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의 구조가 대체로 무언가를 찾는 과정인 것처럼, 우리는 티브이나 인터넷 같은 굉장히 많은 매체를 통해 구멍을 메우려 한다”며 “우리의 질문 자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당신의 질문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큰 줄기는 집 나간 동생을 찾는 언니(양은용)의 이야기지만, 동생을 찾는 것 자체가 주된 목적은 아니다. 여기에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한 애니메이터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한국 남성의 평균적 삶이 주는 무게에 짓눌린 남자(이호영), 항상 어딘가로 떠날 계획을 하는 고속도로 휴게소 여직원, 그 여직원을 취재하는 지역신문 기자 등이 휴게소 주변을 서성거린다. 주인공이 남해고속도로 남강 휴게소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인물들은 남강 휴게소 주위를 맴돌며, 카메라는 남강 휴게소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김 감독은 “어떤 공간이 카메라를 통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열리는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부산/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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