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말했다’ 주연 맡은 김낙형
‘낙타는 말했다’ 주연 맡은 김낙형
“배우가 아니라 동네 사람 같대요. 어디서 주워왔나, 딱이다, 뭐 그런 반응이더라고요.” 영화 <낙타는 말했다>에 주연으로 출연한 연극 연출가 김낙형은 주변의 반응에 좀 서운했던 모양이다. “잘 나가다가 버럭 성질을 내고”, 툭하면 육두문자를 내뱉는 인간 말종이 딱 자기 모습이라니. “도대체 내가 (평소에) 어떻다는 거야, 나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혜화동 1번지 3기 동인 출신으로 <지상의 모든 밤들>(2005), <바람아래 빠빠빠>(2004), <별이 쏟아지다>(2002) 등의 창작 연극을 직접 쓰고 연출한 지식인이 <낙타는 말했다>의 일자무식한 주인공 주영광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독특한 외모 때문일 것이다. 깡마른 얼굴에 툭 튀어나온 광대뼈, 초점을 알 수 없지만 뭔가를 향해 끓어오르는 듯한 눈, 그리고 유행에 전혀 관심 없는 듯한 수수한 옷차림까지. 지난해 최고의 흥행연극 ‘민들레 바람되어’ 연출
“육두문자 뱉는 인간말종 나보고 딱이라니…원 참” “촬영한 곳이 수원시 평동이거든요. 저는 나름대로 도회스럽게 한다고 했는데, 영화 나온 거 보니까 완전 촌놈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부제를 달았죠. 농촌 활극이라고.” 감옥에서 막 출소해 고향으로 돌아온 주영광은 딸 하나 달린 과부를 얻어 같이 살면서 재개발이 예정된 땅을 사는 등 삶의 의지를 불태우지만 뭐 하나 생각대로 되는 게 없다. 급기야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과 재개발이 물 건너갔다는 소식이 들리자 폭발할 지경에 이른다. “겉으로는 시류에 편승하는데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얘기죠. 돈 번다고 하면 우르르 몰리는 게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일 수도 있고.”
형, 동생 하며 지내던 조규장 감독이 “형이 아니면 안 된다”며 보여준 시나리오를 읽고 재미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출연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극단76에 배우로 입단했지만 연기는 진작에 접은 터였다. 1997년 연극 <지피족>에 갑자기 대타로 출연했다가 무대에서 쓰러져 공황 증세를 겪으며 1년 동안 집에서 쉰 이후 그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더구나 한 번도 안 해 본 영화라니. 거절의 뜻으로 “100만원 주면 할게”라고 했다가 덜컥 “바로 입금할게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연극계에서 개런티 100만원은 엄청난 거액인데, 역시 영화계는 달랐다. 하지만 사람들이 배우를 못 알아보는 것은 독립영화 쪽도 마찬가지였다. “식당 툇마루에 앉아 막걸리 한잔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어요.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왔는데, 한 30분 지나니까 이러는 거예요. ‘아 근디 배우는 언제 오는겨?’ 하하하. 주연 배우 3명이 다 와 있는데요.” 연극 연출가로서 그는 지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서울 대학로 최고의 흥행 연극 중 하나인 <민들레 바람되어>를 연출했고, 오는 12월 1일부터 공연하는 <에쿠우스>의 협력연출도 맡았다. 그가 연출한 <맥베드>는 지난해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을 받은 데 이어, 최근 이집트에서 열린 카이로 국제실험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의자 하나로 모든 소품을 표현해 내는 신체연극인데 원작의 긴박함과 처절함을 잘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상을 받은 기념으로 오는 29일까지 대학로 스튜디오76에서 <맥베드>를 공연한다. “연극이라는 공간예술의 특성을 이제야 깨달아가는 것 같아요. 최근 4년 동안 창작극을 전혀 못 썼는데 내년에는 깊이 있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해 보고 싶어요. 영화요? 재미있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열연해야죠. 허허허.” 12일 독립영화전용관(옛 명동 중앙극장)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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