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방향으로 〈남매의 집〉, 〈산책가〉, 〈잠복근무〉, 〈아들의 여자〉.
주목받는 단편 모은 ‘사사건건’
단독으로 개봉할 수 없는 단편영화는 너무 짧아 슬픈 장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감독들이 단편영화로 영화 인생을 시작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단편영화는 가능성의 보물 창고다.
지금까지 그 보물 창고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소수의 영화 관계자이거나 영화 마니아였다. 케이티앤지 상상마당이 극장에서 개봉하는 <사사건건>은 그 보물 창고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다.
<사사건건>은 2009년 나온 단편영화 중 주목할 만한 영화 네편을 모은 것이다. 홍익대 애니메이션과를 나온 김영근·김예영 감독의 <산책가>는 시각장애인의 상상력을 눈부신 원색의 촉감으로 만질 수 있게 한 혁신적인 작품이고, 홍성훈 감독의 <아들의 여자>는 사고뭉치 아들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찾아온 여고생의 낙태 수술 현장에 동행하게 된 아버지의 하루를 사실주의 기법으로 담은 영화다. 이정욱 감독의 <잠복근무>는 자신이 자란 동네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변장을 하고 잠복근무를 하던 형사에게 일어난 해프닝을 그린 유쾌한 코미디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이다. 기성 감독들이 신예 감독을 발굴하는 ‘미쟝센 단편영화제’(2009)에서 7년 만에 처음으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2009 칸 영화제에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남매의 집>은 부모가 없는 집에서 단 둘이 사는 오누이에게 찾아온 불한당들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다.
우리 옛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이야기 구조에 코언 형제의 영화에 나옴직한 엉뚱한 인물들의 기이한 행동을 채워넣는다. 지구가 외계인들에 의해 이미 점령당한 상태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판타지적 요소도 갖고 있다. 기왕에 코언 형제를 가져올 바에야 그들의 유머까지 가져왔다면 영화가 더욱 흥미로워졌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는 소격 효과를 담당하는 유머의 쓰임새는 이런 잔인한 (분위기의) 영화에서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21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케이티앤지 상상마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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