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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국정원 요원-남파간첩 ‘승부 본능’

등록 2010-02-01 14:02

사진 쇼박스 제공
사진 쇼박스 제공
분단영화의 진화 ‘의형제’
남·북서 버림받은 송강호·강동원
유머·재치담은 동상이몽 추격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처조카 이한영(본명 이일남)은 1997년 2월 15일 밤 9시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으로부터 머리와 가슴 등을 총에 맞아 병원으로 옮겼으나 열흘 뒤 숨졌다. 당시 이씨는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잠행 14년>이라는 책을 발표하고 텔레비전에 출연해 북한 체제와 김정일을 비판하는 등 반북 활동에 열을 올리던 중이었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이를 북한 공작원에 의한 소행이라고 결론지었다.

영화 <의형제>의 도입부에 나오는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는 이한영 피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남파된 북한 공작원 송지원(강동원)은 전문 킬러 ‘그림자’(전국환)와 함께 배신자 일가족을 몰살한다. 송지원은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어린아이마저 죽이려드는 그림자를 막으려다 시간을 끌게 되고 결국 체포 위기에 몰린다. 송지원은 배신자로 몰려 조직으로부터 버림받는다.

국제적인 테러범 ‘그림자’를 오랫동안 추적해온 국가정보원 대공수사 요원 이한규(송강호)는 공을 독식하려고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암살 현장으로 출동한다. 그러나 노련한 그림자와 재빠른 송지원을 눈앞에서 놓치고 만다. 때는 마침 아이엠에프 외환 위기로 인한 구조조정 시기. 이한규는 거의 강제로 명예퇴직을 당하고 만다. 이혼까지 당한 이한규는 심부름센터에서 입에 풀칠을 하며 산다.

영화는 남과 북으로부터 각각 버림을 받은 두 사내가 벌이는 ‘동상이몽’과 ‘오월동주’의 퍼포먼스다. 자신만 상대의 정체를 알아봤다고 착각하는 이한규와 송지원은 각자의 목적을 숨기고 같은 집에 살게 된다. 이한규는 송지원을 미끼로 그림자를 잡아 현상금을 타는 게 목적이고, 송지원은 이한규의 동태를 상부에 보고해 배신자라는 누명을 벗으려 한다.

사진 쇼박스 제공
사진 쇼박스 제공

간첩 잡는 국정원 요원과 북한에 충성하는 남파 공작원이라는 설정은 얼핏 이 영화가 ‘냉전의 추억’에 기반한 영화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곳곳에 시대의 변화에 관한 징후를 배치하는 것으로 반공영화의 혐의를 벗는다. 아이만은 죽이지 말자고 버티던 송지원은 도망간 외국인 아내를 잡으러 다니면서도 최대한의 인간적인 배려를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송지원은 피살 사건 이후 자수하지 않고 6년을 버티는데, 한편으로 처자식의 탈북을 추진하는 등 모순적인 행동을 한다. 전향을 거부하는 그의 고집은 북한 체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라기보다는 “나는 배신자가 아니”라는 자기 결백을 입증하려는 발버둥처럼 보인다. 이한규 역시 간첩을 잡겠다는 일념에 불타는 국정원 요원이지만 무슨 대단한 충성심이 있다기보다는 먹고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인물에 가깝다.

<의형제>는 남북 대치 상황을 상수로 놓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넘어설 만한 신선한 충격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에 대해 발언한다는 점이 요즘 상업영화로는 드문 덕목이 아닌가 한다.

<영화는 영화다>의 장훈 감독은 이 영화로 웰메이드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존재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상업영화의 공식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면서도 유머와 재치로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다. 신파로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일반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균형 감각이 탁월하다. 스릴러에 기반하고 있는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과 함께 한국 영화를 이끌어갈 차세대 재목임에 틀림 없다. 이 두 감독은 코미디에 기반한 상업영화의 선배 윤제균·김용화 감독과는 또다른 영토를 개척하고 있다. 4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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