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존’
이라크전 진실을 묻는 ‘그린존’
‘본’ 시리즈 그린그래스 감독-맷 데이먼 손잡아
‘부조리한 권력’에 쫓기는 군인의 필사생존 그려
‘본’ 시리즈 그린그래스 감독-맷 데이먼 손잡아
‘부조리한 권력’에 쫓기는 군인의 필사생존 그려
세상의 모든 주류는 이렇게 말한다. ‘의심하지 말라, 그리고 질문하지 말라.’ 그러나 만약 예외가 있다면, 할리우드 영화가 그중 첫손에 꼽힐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의심하고, 질문하는 주류다.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본’ 시리즈의 영웅 맷 데이먼이 다시 만난 영화 <그린존>은 이라크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의심하고 질문한다. 영화는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WMD)가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이라크 전쟁의 발발 원인에 대한 거대한 허구를 쌓아올린다.
머리가 있는 전쟁오락영화
<그린존>은 전쟁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와 반전영화 <엘라의 계곡>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머리가 있는 전쟁오락영화쯤 된다고 할까. 맷 데이먼이 연기한 로이 밀러는 의심하고 질문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적인 주인공이다. 미 육군 소속의 대량살상무기 수색팀장인 그는 상부에서 하달된 익명의 제보에 따라 대량살상무기 은닉 장소를 덮치지만 번번이 허탕을 치고 만다. 그리고 그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누가, 왜 허위 제보를 했을까? 진실을 궁금해하는 순간, 이미 그는 금기를 깬 것이다. 군인이 상부의 명령을 의심한다는 건, 자동차 바퀴가 핸들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나 진배없다.
영화 속 주인공의 지위가 흔들리고 불안해질수록 관객들의 감정이입 강도는 비례적으로 커진다. 영웅적 개인과 거대한 시스템의 불화가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인 이유다.
“이라크의 미래는 이라크인들에게”
영화는 이라크인들의 자주적 정권 수립을 바라는 미 중앙정보국(CIA) 이라크 지국장 마틴 브라운(브렌던 글리슨)과 꼭두각시 정권을 수립하려는 미 국방부 특수정보팀장 파운드스톤(그레그 키니어)의 대결 구조를 띠고 있다. 로이 밀러는 마틴 브라운의 편에 선다. 그리고 생사를 넘나드는 추격전 끝에 내부의 추악한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가 내리는 결론은 이라크의 미래는 이라크인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포화 속 바그다드에 서 있는 듯
본 시리즈에서 확인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장기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박진감 넘치는 현란한 편집, 실감나는 전투신은 포연이 자욱한 바그다드 한복판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그린존’은 사담 후세인이 살던 바그다드 궁을 개조한 것으로, 미군 사령부 및 이라크 정부청사가 입주해 있는 전쟁터 속 안전지대다. 고급 수영장과 식당, 나이트클럽, 마사지 시설, 대형 헬스클럽과 댄스 교습소 등이 있었으며, 이슬람 국가에서는 금지되는 술이 허용됐다. 안락한 실내에 앉아 전쟁의 아수라장을 조종한 수뇌부들을 비꼬는 제목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힘은 어디서 오나 영화를 보고 나면 미국이 정말 무서운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 최대의 무기 수출국이며,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깡패국가라서만이 아니다. 미국이 정말 무서운 건 자신의 추악한 본질을 폭로하는 영화를 만들어 자기들뿐 아니라 전세계인이 보도록 수출까지 한다는 점이다. 내부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걸 보면, 세계 지배를 위한 정치와 영화의 역할 분담이라고 폄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자국 비판이든 뭐든 영화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은 모두 동원할 수 있는 곳이 할리우드다. 정권의 코드와 맞지 않는다고 투자 단계에서 영화가 엎어지는 나라, 김연아-유인촌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다고 정부 부처가 수사를 의뢰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 관객은 미국의 그 얄미운 표현의 자유와 아량이 부럽다. 25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월드시네마 제공
영화 ‘그린존’의 한 장면.
본 시리즈에서 확인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장기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박진감 넘치는 현란한 편집, 실감나는 전투신은 포연이 자욱한 바그다드 한복판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그린존’은 사담 후세인이 살던 바그다드 궁을 개조한 것으로, 미군 사령부 및 이라크 정부청사가 입주해 있는 전쟁터 속 안전지대다. 고급 수영장과 식당, 나이트클럽, 마사지 시설, 대형 헬스클럽과 댄스 교습소 등이 있었으며, 이슬람 국가에서는 금지되는 술이 허용됐다. 안락한 실내에 앉아 전쟁의 아수라장을 조종한 수뇌부들을 비꼬는 제목이다.
영화 ‘그린존’의 한 장면.
할리우드 영화의 힘은 어디서 오나 영화를 보고 나면 미국이 정말 무서운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 최대의 무기 수출국이며,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깡패국가라서만이 아니다. 미국이 정말 무서운 건 자신의 추악한 본질을 폭로하는 영화를 만들어 자기들뿐 아니라 전세계인이 보도록 수출까지 한다는 점이다. 내부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걸 보면, 세계 지배를 위한 정치와 영화의 역할 분담이라고 폄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자국 비판이든 뭐든 영화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은 모두 동원할 수 있는 곳이 할리우드다. 정권의 코드와 맞지 않는다고 투자 단계에서 영화가 엎어지는 나라, 김연아-유인촌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다고 정부 부처가 수사를 의뢰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 관객은 미국의 그 얄미운 표현의 자유와 아량이 부럽다. 25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월드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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