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래핑보아 제공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 배우 정유미
이별 뒤 복잡미묘한 감정 연기 호평
이별 뒤 복잡미묘한 감정 연기 호평
처음 본 정유미(사진)는 배우 느낌이 별로 안 난다. 예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뭔가 건전한 분위기가 각양각색의 끼가 넘쳐나는 다른 여배우와 다르다는 뜻이다. 예쁘장하고 조용하지만 꾸밈없는 학교 후배 같은 느낌. 그러나 보면 볼수록 그 이면에는 엄청난 끼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묘한 배우.
그가 이번엔 <조금만 더 가까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내 깡패 같은 애인> <옥희의 영화>에 이어 올해 들어서만 세번째 출연작이다. 앞의 두 영화에 견줘 배역이 크진 않지만 정유미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다. 더구나 <조금만 더 가까이>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은 정유미가 처음 출연한 6분짜리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2003년)의 연출자였다.
독특한 감각의 단편들로 이름을 알린 김 감독의 이번 첫 장편에서 정유미는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잘 표현해 냈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지 실제 밖으로 (이별한 남자친구에게 집착하는 말들을) 내뱉는 사람들은 거의 없잖아요. 연기이긴 하지만 무척 시원했고 큰 소리를 칠 땐 조금 민망하기도 했어요.”
올해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 뒤 관객과의 대화에서 정유미는 “길거리에서 큰 목소리로 그런 대사들을 하는 게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정유미는 아직도 “배우라고 불리는 게 쑥스러운” 배우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의 언론시사회 뒤 기자간담회에서 갑작스럽게 터진 그의 울음보는 아직도 미스터리. 기자회견장의 중압감(?)과 완성작을 본 뒤 느껴지는 아쉬움 따위가 눈물을 쏟게 만들었던 게 아니었을까 정도의 짐작만 있을 뿐.
그러나 7년 넘는 연기 경력으로 그동안 찍어온 작품 목록은 화려하다. 지난해에만 9편.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첩첩산중>을 비롯해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 상업영화인 <10억> <차우> 등이 지난해 정유미가 출연한 작품들이다.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이른바 88만원 세대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준 정유미는 <옥희의 영화>에서 남자들의 구애를 미적지근하게 즐기는 ‘밀고 당기기’의 고수 역할을 얄밉게도 잘 해냈다. 이번 <조금만 더 가까이>에선 좀더 솔직한 모습이다. “연기 하기가 부끄러웠다”지만 그의 연기에는 그런 흔적이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
늦가을 비가 처연히 내리는 가운데 옛 남자친구를 찾아가 괴롭히는 여자. 거짓과 진실의 경계 따위는 아랑곳없이 자존심과 미련 사이에서 오락가락 흔들리는 젊은 여자의 마음이 가을바람처럼 쓸쓸하면서도 톡톡 튀는 감성으로 표현됐다. 정유미는 “마음으로는 매달리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복잡한 심정”을 연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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