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진 감독
재개발촌 살인범…무심한 사회
독특한 색감과 음향으로 꿰뚫어
“이해받지 못한 개인 그리고파”
독특한 색감과 음향으로 꿰뚫어
“이해받지 못한 개인 그리고파”
칸영화제 단편경쟁부문 오른 ‘고스트’ 이정진 감독
“아는 사람들이 저보고 마이너리그 결정체래요.”
뭔 말인가 하면, 때론 이런 식인 것이다. “감독님, 나이가?” 그래서 나이를 얘기해주면 면접 보러 온 영화 스태프가 “일이 생겨서”라며 가버리고, “학교가 어디?” 글쎄, 저 스태프는 그게 왜 궁금할까 싶어도 “중학교 1학년 중퇴”라고 하면 “인생 잘못 사는 거다, 학교는 나와야 한다” 어쩌고 하며 갑자기 훈시를 늘어놓는 것이다.
“‘빽’(배경) 없지, 나이 어리지, 학교 안 다녔지, 성장과정이 희한하다 보니…. 제가 고스트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고스트>(유령·아래 사진)는 이런 것쯤이야 예상 못했던 것도 아니라며 웃는 이 24살 여감독의 다섯번째 단편영화 제목이다. 다음달 11일 개막하는 64회 프랑스 칸영화제 단편영화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이다. 국내 영화가 단편 경쟁에 진출한 건 2007년 양해훈 감독의 <친애하는 로제타> 이후 4년 만. 1999년 송일곤 감독이 <소풍>으로 이 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은 이후 12년 만의 수상 도전이다. 이번 칸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엔 국내 영화가 초청받지 못했다.
26일 서울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만난 이정진(위) 감독은 “프랑스어 자막을 넣는 후반 작업으로 정신이 없다”고 했다. 지난 18일 경쟁부문에 오른 걸 알게 됐는데, “내 작품이 늘 환영받지 못해 영화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지만 내 작품을 보는 다른 시선도 있구나 싶어 안도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칸영화제 공모 마감에 쫓겨 음향과 색상 등의 작업을 약간 덜 마친 작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지내던 미국 독립영화 존 조스트 감독이 그의 완성작을 보고 칸영화제 쪽에 “이 친구를 영화판에 뿌리내리게 하고 싶다. 완성본을 다시 보내면 눈여겨봐 달라”고 요청했고, 그의 작품은 1차 심사 관문을 뚫었다.
“3년 전, 영화인을 지원하는 이탈리아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가려 할 때 영화 관련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어서 추천서를 받을 데가 없었죠. 그래서 국내 대학에서 강의하던 분에게 다짜고짜 찾아가 추천서 좀 써달라고 한 게 바로 존 조스트 감독님이었죠.”
음산한 색상과 기괴한 음향을 입힌 10분여짜리 영화 <고스트>는 유령처럼 방치된 재개발촌에서 한 아이를 강간·살인하고 폐허에 숨어든 유령 같은 사내의 이야기를 담았다.
감독은 사내의 피폐된 자아인 ‘닭뼈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통해 현재와 환상, 시간적 배열을 능숙히 뛰어넘는가 하면, 정지된 스틸사진과 동적인 영화장면을 넘나들며 스릴러적 긴장감까지 끌어올린다. 특히 아이의 절규는 재개발촌의 드릴, 톱, 망치 소리에 이내 묻히는데, “아무도 듣지 못하는 우리의 무심함”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생각이 읽힌다.
“이거 하지 말고, 저거 하지 말라는 게 답답해서” 그는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나왔다. 10대 시절 대학교 특강을 찾아가 청강을 몇번 했을 뿐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사회 일면을 영화로 보여주면 갑갑하지 않고 좋겠다” 싶어 영화를 하겠다 했지만, 영상교육이라곤 17살 때 청소년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에서 두달간 카메라 작동법 등을 배운 게 전부다. 털을 숭상하는 곳에서 털장갑을 벗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털장갑 속 진짜 고무>가 17살에 만든 첫 단편이고, 그 뒤 “놀이 삼아 찍으면서” 영화의 깊이를 더해갔다.
“전단지 돌리기, 편의점 알바, 아이스크림 팔기 등 아르바이트도 꽤 했다”는 그는 “그간 국내에서 별 인정을 받지 못해 갈등도 많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으로 지내왔다”고 했다. “액션 같은 큼직한 스케일의 영화가 좋다”는 그는 “궁지에 몰린 개인, 이해받지 못하는 개인들을 영화에 담고 싶다”고 했다.
혹여 나이 어리고 가방끈도 길지 않다더니 ‘이 친구 제법이야’란 이들에게 한 가지만 더. 2년 전 그의 작품 <자연의 신비>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댄스필름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이 영화제가 생긴 뒤 역대 최연소라는데, 그때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우리 심사위원이 보수적인 사람이었다면,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보여준 이 감독에게 상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수상 소식은 국내에까지 전해오지 못했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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