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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워킹푸어 감독’ 영화계 현실을 말하다

등록 2011-05-19 21:58수정 2011-05-19 22:29

‘무산일기’ 박정범 감독
‘무산일기’ 박정범 감독
4800만원 빚내 어렵게 제작…상 휩쓸었지만 여전히 옥탑방
“스태프 임금체불, 양심의 문제”…“기업들 산학연계 검토를”
‘무산일기’ 박정범씨 인터뷰

“참, 빚은 다 갚았어요?”

“아…하하, 아직 국제영화제 상금들이 입금이 안 돼서.” 박정범(35) 감독은 잠시 셈을 했다. “1100만원 남았네요.”

탈북자의 남한 사회 생활을 다룬 그의 저예산 장편영화 데뷔작 <무산일기>의 제작비는 총 8000만원.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 2000만원, 형이 빌려준 2000만원 등 빚 4800만원이 들어갔다. 그렇다고 체육교육과(연세대)를 다닌 이 신체 건강한 사내를 ‘손 벌리는 사람’쯤으로 여기면 오산이다. 2002년 대학 졸업 뒤 영화사에서 2년여 일했다. 월급이 몇십만원뿐이었지만,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 작품이 영화화라도 됐다면 더 버텼을 것이다. 서해 꽃게잡이 배도 탔고, 전기공도 해봤다. 고층건물을 짓는 공사판에도 다녔다. 일하면서 단편영화 20여편을 연출하고, 20여 단편엔 배우로 출연했다.

“여전히 옥탑방에서 산다”며 허허 웃는 박 감독은 일해도 형편이 빠듯한 ‘영화계 워킹푸어(근로빈곤층)’의 한사람이었지만, 지금 <무산일기>로 국제영화계를 사로잡고 있다.

그가 탈북자 주인공 ‘전승철’로도 출연한 <무산일기>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영화제 대상, 미국 뉴욕 트라이베카영화제와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신인감독상 등 국제영화제에서 9개 상을 휩쓸었다. 국내 개봉 6주차인 현재, 독립영화 대박 기준인 1만명에 근접한 8000명을 돌파했다.

“뉴욕에선 ‘집 없는 홈리스들을 더러운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그들도 사연이 있구나, 내가 이기적이었다’는 분도 있었고, 네덜란드에선 백발노인이 ‘내가 이주노동자인데 내 젊은 시절을 봤다. 세계 어디에나 있는 얘기’라며 울먹이시더라.”

탈북자가 등장하지만, 결국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박 감독은 “외국인들이 탈북, 남북문제에도 관심을 보이면서, ‘요즘 한국 영화가 폭력적인데, 남북 분단 스트레스가 잠재하다 폭력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냐’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폴란드 국제독립영화제 대상 상금 10만달러(1억800만원) 등의 부상도 챙긴 그는 “그래도 난 상금 받아 차기작을 준비하지만…”이라며 영화계 처우에 눈을 돌렸다.

그는 “아는 촬영 스태프는 (지난해 9월 개봉한) 영화 임금을 아직도 다 못 받았다. 제작 예산이 줄어들면 스태프 인건비부터 줄이고, 그나마도 스태프 임금을 제일 마지막에 주거나 임금 체불도 잦다. 이건 영화계 전체 양심의 문제다. 영화인들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답답해했다. 영화산업노조가 2009년에 조사한 스태프 연평균 소득은 623만원이고, 지난해 영진위가 발표한 이들의 취업일수는 5.27개월에 불과하다. 영화인들은 스태프 실업기간에 지원하는 실업부조금 제도, 처우 개선을 담은 표준근로계약서 조속 시행 등을 원하고 있다.

박 감독은 독립영화 활성화를 위해서도 “기업들이 산학연계를 통해 영화학도들의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프랑스 파리는 지하철 2~3개 구간마다 예술·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작은 극장들이 많지만, 우린 독립영화를 만들어도 상영할 곳이 거의 없다. 구청마다 있는 회관에서 상영 기회를 주고 지역민과 토론도 한다면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직영하는 독립영화 전용관(인디플러스)은 서울 1개관에 그치고, 이마저도 어디에 있는지 홍보가 미약하다. 그는 “김의석 영진위 신임 위원장이 여러 지원책을 내놓고 있으니 기대를 해본다”며 “(독립영화 지원 예산 등을 삭감했던) 조희문 전 위원장처럼 하면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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