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우리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다

등록 2011-05-30 14:10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통합논술 세미나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1. 인간 의식의 정확성

■ 책 소개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이 지제크/이운경 옮김/한문화

<매트릭스>는 1999년 개봉한 공상과학 영화다. 파격적인 특수 효과, 화려한 액션이 눈요깃감이다. 그러나 이런 요소로 관심을 끈 영화는 많았다.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도 할리우드 공상과학 영화의 상투적 스토리다.

그런데도 <매트릭스>는 많은 영화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철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매트릭스> 안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인식론·존재론·인지과학·인공지능·실존주의·마르크시즘·불교·기독교·허무주의 등이 녹아 있다.

이런 주제는 일반인들에게 너무 어렵고 따분하다. <매트릭스>는 사람의 귀를 잡아끄는 방식, 만화책이나 비디오 게임 같은 방식으로 이 무거운 걸 얘기한다. <매트릭스>는 액션 활극 영화의 외피를 뒤집어쓴, ‘인간의 의식에 관한 학위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 풀무질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예언자 오라클을 방문한다. 오라클은 빈민가 아파트에 사는 60대 흑인 여자다. 그의 방 출입구 위쪽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글자가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매트릭스>를 관통하는 기본 관점은 소크라테스가 ‘동굴의 비유’를 통해 하고자 했던 말과 같다.

죄수들이 어렸을 때부터 동굴에 갇혀 있다고 하자. 밧줄로 묶인 죄수들은 앞만 볼 수 있다. 그들 뒤에는 작은 모닥불이 있다. 죄수와 모닥불 사이로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따라서 죄수들은 오직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볼 수 있다.

죄수들은 다른 현실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한다. 어느 날 죄수 한 명이 풀려나와 태양 빛 아래에서 실제 사물을 본다. 그는 동굴로 돌아가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가 미쳤다고 비난할 것이다.

이 죄수의 경험은 네오의 경험과 똑같다. 네오는 모피어스를 통해, 그가 지금까지 살았던 세상이 컴퓨터가 만든 인공물에 불과했다는 말을 듣는다.


영화 매트릭스
영화 매트릭스
사람들은 끈적끈적한 액체가 가득 찬, 엄마의 자궁과 비슷한 관 속에 담겨 몸에는 케이블이 꽂힌 채 가상 세계를 머릿속에 주입받으며 컴퓨터에 전원을 공급하는 ‘인간건전지’로 산다.

네오가 처음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회복 과정을 거칠 때 “눈이 왜 아픈 거죠?”라고 묻는다. 모피어스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으니까”라고 대답한다.

플라톤이 인간은 거짓 세상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 갈파했듯 모피어스도 네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매트릭스)은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자네의 눈을 가리는 세계야… 자네가 노예라는 진실 말야. 네오, 자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거나 만져볼 수 없는 감옥에 태어난 거야. 자네 마음의 감옥 말이야.”

동굴의 비유에 나오는 죄수들 역시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다.

네오의 깨달음과 이데아

플라톤이 동굴의 비유를 사용한 건 독자들을 설득해 더 나은 실재인 이데아로 마음이 향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우리가 시각·청각·촉각·미각·후각 등을 통해 알거나 경험하는 건 동굴 속에 갇힌 죄수가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림자가 실물의 모방에 불과하듯, 우리가 오감으로 지각하는 건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하다. 우리는 아름다운 일몰, 정의로운 행동, 정말로 맛있는 국수를 경험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이데아의 모방, 즉 미(美) 자체, 정의 그 자체, 선(善) 그 자체 등의 흉내 내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는 감각을 통한 이해가 아닌 지성을 통한 이해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플라톤에게 물질은 이데아만큼 진실하지 않다.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계속 강조하는 것 역시 지성이 감각보다, 정신이 물질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네오가 훈련 도중 고층 건물 건너뛰기에 실패한 뒤 깨어났을 때 입가에는 피가 흐른다. 그는 가상의 경험이 신체에 직접적인 상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에 놀란다.

“매트릭스에서 죽으면 여기서도 죽나요?”

모피어스는 냉정하게 대답한다.

“육체는 정신이 없으면 살 수 없어… 정신이 그것을 진짜로 만들지.”

<매트릭스>와 철학적 회의론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계가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옹호하는 철학적 입장이 회의론이다. 회의론자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외부 또는 현상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데카르트가 <제1 철학에 관한 성찰>에서 믿음을 보류해야 한다고 판단한 첫 번째 범주는 감각의 토대 위에 형성한 믿음들이다. 데카르트는 좀더 나아갔다. 그는 “꿈속에서 당신은 자신이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당신은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모피어스도 네오에게 말한다.

“너무도 현실같이 느껴지는 꿈을 꿔 본 적이 있나, 네오?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면 어찌하겠나? 꿈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어떻게 구분하지?”

데카르트는 더 나아가 ‘최고의 힘과 꾀를 가진 악령’이 나를 속여 외부에 물리적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75년 페터 웅거라는 학자는 악령보다는 사악한 과학자에게 인류 모두가 속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제시했다.

과학철학자인 힐러리 퍼트넘은 1981년 <이성, 진실 그리고 역사>라는 책에서 비슷하게 언급했다. 그는 우리의 뇌가 외과 수술로 신체에서 분리되어 큰 통에 담겨 있는 광경을 그려 볼 것을 제안했다. 그 통에는 특정한 화학 물질이 가득 차 있어 우리의 뇌에 양분을 공급한다. 강력한 컴퓨터가 전자 충격을 뇌에 보내어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테니스를 하는 등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모피어스도 네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짜가 뭐지? 진짜를 어떻게 정의 내리지? 만일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고 보는 그런 것들을 진짜라고 하는 거라면, 진짜는 그저 너의 뇌가 해석하는 전자 신호일 뿐이야.”


■ 마치질

사이퍼의 배신은 비난만 받아야 할까?


사이퍼의 배신으로 모피어스는 요원에게 붙잡힌다.
사이퍼의 배신으로 모피어스는 요원에게 붙잡힌다.
기독교적 분위기가 가득한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피어스는 사도 요한을, 사이퍼는 배신자 유다를 상징한다. 사이퍼는 9년 동안의 네브카드네자르호 생활에 지친 나머지 동료들을 배신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요원 스미스를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난다.

사이퍼는 스테이크를 자르고 와인을 마시면서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가 이전에 있던 일들을 죄다 잊어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난 말이지, 이 스테이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내가 이걸 입속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뇌에 이렇게 말하는 거지. 아주 부드럽고 맛있다고 말야. 9년 동안 살면서 내가 깨달은 게 뭔지 알아? 모르는 게 행복이라는 거야.”

그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한다. 그 쾌락이 진짜가 아니라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짜일지라도 상관없다고 본다. 사이퍼는 무조건 비난만 받아야 할까?

그는 공리주의자 벤담의 충실한 후계자다. 벤담은 인간의 행위의 동기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데 있다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했다. 사이퍼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 했다.

벤담의 제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윤리적 판단 기준을 ‘쾌락의 양’으로 봤던 벤담의 공리주의에서는 많이 벗어난다.

영화 <매트릭스>에는 사이퍼에게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일말의 동정심을 가지게 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네오가 네브카드네자르호 대원들과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자. 네오는 현실인 2199년의 사람들이 먹는 즐거움을 잃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대원들이 먹는 음식은 수도꼭지 비슷한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양가 높은 합성 아미노산, 비타민, 미네랄로 만든 단세포 단백질이다. 대원들은 이 음식을 날달걀 또는 콧물에 비유한다.

도저는 이 음식을 “전부 몸에 필요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프로그래머인 마우스는 그것이 쾌감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마우스는 네오에게 요원 대비 훈련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빨간 옷을 입은 여자를 만나보라고 권유한다. 다른 대원들이 빈정거리자 마우스는 반박한다.

“네오! 욕망을 부정하는 건 인간이라는 걸 부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니까요.”

마우스는 사이퍼의 배신으로 요원들과 싸우다 죽는다. 마우스는 사이퍼와 똑같이 욕망을 중시하지만 동료를 배신하지 않는다.

혹시 사이퍼가 느낀 쾌락은 진짜가 아니니 가치가 없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네오에게 매트릭스의 실체를 알려 준 모피어스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가 뭐지? 진짜를 어떻게 정의 내리지? 만일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고 보는 그런 것들을 진짜라고 하는 거라면, 진짜는 그저 너의 뇌가 해석하는 전자 신호일 뿐이야.”

만약 실재가 정말로 감각적 경험에 불과하다면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든 무슨 상관인가?


■ 담금질

현재가 또다른 매트릭스다

모피어스는 매트릭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매트릭스가 뭐냐고? 통제야.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만들어 낸 꿈의 세계지. 그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통제하기 위해 건설된 거야. 인간을 바로 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는 건전지를 들어 보인다. 인간은 컴퓨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건전지일 뿐이다. 매트릭스는 통제다. 통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인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누군가의 지시·감시·부추김에 의하여 행동하면서도 마치 개인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믿게 만드는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말하는 통제는 후자다.


컴퓨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인간건전지.
컴퓨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인간건전지.
문제는 이런 통제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011년 지금 이 순간에도 있다는 점이다. 모피어스가 “매트릭스는 어디에나 있어! 지금 이 호텔 방 안에도, 티브이(TV)에도, 교회에 나가 헌금할 때도 있다”고 했듯이.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주의체제에서 프롤레타리아는 기계·공장과 같은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마치 자기 노동력을 자발적으로 파는 자유 시장에서 산다고 믿는다. <매트릭스>에서 인간이 컴퓨터를 위한 건전지가 되듯이 노동자는 자본주의사회를 위한 ‘근본 에너지(노동력) 공급원’으로 전락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개인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시장의 법칙은 사회 전체를 위해 일하는 결과를 만든다. 내가 제조한 빵을 비싸게 팔고 싶지만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은 나로 하여금 다른 가게보다 비싸게 팔지 못하도록 강제한다.

기독교적 종교관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콜럼버스는 포르투갈 군주의 명에 따라, 자기의 공명심을 채우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그러나 기독교에 따르면 콜럼버스는 ‘신의 섭리’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찰스 다윈의 자연 진화 역시 매트릭스와 비슷하다.

헤겔은 ‘이성의 간지(奸智)’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세계정신 스스로는 배후에 있어 공격도 당하지 않고, 상처도 입지 않으면서, 개인을 조종하여 서로 싸우게 만들고 희생시키며 자기의 목적을 실현한다. 세계사의 과정은 마치 이성이 교활하게도 가지각색의 정열을 서로 손상시킴으로써 자기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인간 행동의 제1 결정인자가 인간의 유전자 구조, 즉 우리의 본성이냐 아니면 양육, 즉 인간이 길러지는 방식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본성-양육 논쟁의 양측 모두, 인간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힘들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한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스키너는 어느 누구도 프로그램화된 것 이상의 행동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거나, 인간은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해 칭찬받거나 비난받아야 한다는 견해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과론적으로 결정된 세계에서 옳고 그름이란 있을 수 없다. 만약 실재 세계가 그런 곳이라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트릭스에 사는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 벼리기

아래 논제를 읽고 글을 쓴 뒤, <아하! 한겨레> 누리집(www.ahahan.co.kr)에 올려 주세요. 잘 쓴 글을 선택해 ‘통합논술 세미나’에 실어 줍니다.

1. ‘담금질’의 내용에 관해 찬반을 밝히시오. (800자)

2. ‘마치질’의 글을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시오.

사이퍼와 마우스는 똑같이 인간 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사이퍼는 동료를 배신하지만 마우스는 인간 해방의 대의에 충실하다. 똑같이 감각을 중시하는데 사이퍼와 마우스의 행동이 다른 이유를 써 보시오. 단, 글 가운데 반드시 ‘도덕 또는 윤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글쓴이 스스로가 내린 정의를 포함하시오. (800자)

3.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쓰시오. 본문 내용과 아래 글을 참조해 써 보시오. (1200자)

(1) 꿈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던 사람이 아침이 되어서 울게 되는 경우가 있다. 꿈속에서 슬피 울던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사냥을 나가기도 한다.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그것이 꿈인 줄을 모른다. 또 꿈속에서 그 꿈을 풀이하기도 한다. 꿈에서 깬 뒤에야 그것이 꿈인 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은 스스로 깨어 있다고 생각하고 아는 체를 하여 임금이니 목동이니 하지만, 어리석은 일이다.

나와 그대는 모두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대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역시 꿈인 것이다. 이러한 말을 사람들은 이상한 말이라 할 것이다. 만세 뒤에 위대한 성인을 만나서 그 뜻을 알게 된다 해도 그것은 늦은 것이 아니다.

(2) 옛날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그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다. 자기 자신이 즐겁게 느끼면서도 자기가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니 엄연히 자신은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분별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물화(物化)라 부른다.

<장자> 제물론(齊物論)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