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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시청자 속이는 방송 역으로 속인 ‘공갈 다큐’

등록 2011-06-05 19:54수정 2011-06-05 19:59

감독이 2년간 직접 식당 차려 운영
돈내고 ‘맛집’ 소개되는 과정 몰카에
“미디어 상업성·대박 욕망 고발 의도”
‘트루맛쇼’ 보니

방송의 ‘은밀한 속살’을 대놓고 보여주는 이 영화, <트루맛쇼>를 몇살부터 봐야 할까?

‘12세 관람가 등급’이 나왔지만 김재환(42·사진) 감독은 썩 내키지 않은 표정이다. “너무 어린 아이들이 세상을 알아버리면 안 될 것 같아 등급심의 때 15세 관람가로 신청했다. 이 영화 보고 미디어의 올바른 활용법을 배우라고 12세 관람가를 줬나?”

이 말을 하며 감독은 웃었다. <트루맛쇼>는 “저것이 진짜이겠거니”라며 별 의심 없이 봤던 방송의 가면 속 맨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재밌는 동영상 교재’라 불러도 좋을 듯싶다.

2일 개봉한 <트루맛쇼>는 방송사 맛집 프로그램의 조작과 기만을 파헤친 영화다.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돈이란 썩은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파리떼를 찍은 자연 다큐멘터리”다. 김 감독이 2009년 7월부터 2년 동안 월세 400만원을 내고 직접 식당을 차려 ‘몰래카메라’ 기법으로 1000만원의 뒷돈을 내고 기어코 맛집으로 방송에 소개되는 과정까지 담았다. “시청자를 속이는 방송사를 역으로 속인 블록버스터급 공갈 다큐”라 아니할 수 없다.

영화는 식당과 방송 제작진을 연결하는 맛집 브로커, 음식 칼럼니스트, 맛집 프로그램 작가들의 인터뷰, 방송 자료화면 등을 빠른 화면 전개와 경쾌한 음악을 통해 맛없는 맛집과 미디어의 실상을 보여준다.

1년에 맛집이라며 방송에 나오는 식당이 9229개에 이르고, 제작진에 돈을 쥐여준 식당들이 제작진의 요구대로 청양고추를 잔뜩 뿌려놓은 “매워서 죽든지 말든지 돈가스” 등을 급조해내고, 연예인이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식당이 단골집으로 둔갑해 소개되거나, 맛집 브로커가 100차례 넘게 가짜 식당 주인으로 줄기차게 방송에 나와도 걸러내는 제작진이 없고, 동원된 손님들이 “힘이 솟는다”는 둥의 대사와 손짓까지 할당받아 그럴싸하게 연기하는 모습들이 영화의 70분을 꽉 채운다. 위생 불량으로 방송에 고발된 식당이 이명박 대통령의 단골 맛집으로 바뀌어 방송된 사례도 곁들였다.

영화는 더 나아가 “콘텐츠가 우리의 생명”이라며 “1등 탈환”을 외치는 김재철 <문화방송>(MBC) 사장의 신년사 장면 등을 섞어 넣으며, 방송사를 향해 윤리와 신뢰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이대로 돈에 저당잡혀 헛된 욕망을 부추길 것인지, 진짜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진다.


시청자를 속이는 미디어의 거짓, <트루맛쇼> 제작진의 ‘몰카’ 앞에서 조작을 해대는 방송사의 관성화된 천연덕스러움을 보다 보면 웃음이 곳곳에서 나온다. 까탈스런 언론시사회에서 이례적으로 박수까지 터져나왔다.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 장편경쟁에 출품돼 관객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 <트루맛쇼>. B2E 제공
영화 <트루맛쇼>. B2E 제공
영화는 개봉 전부터 논란이 됐다. 예민한 내용 탓에 엠비시가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고, 법원이 “공공의 이해관계를 위한 것”이라며 기각했다. 김재환 감독은 소송과 관련해 “권력이 상영금지 소송을 내면 엠비시는 ‘표현과 언론의 자유’라며 방어했는데, 이번 소송으로 엠비시는 그 방어논리가 무너졌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영화 기획 의도에 대해 “맛집이란 콘셉트를 통해 돈의 의해 기획되는 방송, 시청률을 올려 광고를 유치하겠다는 미디어의 상업성, 누군가 돈을 내서 방송과 미디어를 활용해 대박을 내보겠다는 그릇된 욕망 등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미디어의 가면에 대한 깨어 있는 자들의 끊임없는 합리적 의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1996년 엠비시 시사교양 피디(PD)로 들어가 2001년 퇴사해 영상콘텐츠 회사(B2E)를 차린 김 감독은 수천만원을 주고 방송에 출연하는 의사 등 전문가들의 방송 출연 실상을 보여주는 ‘미디어 2부’를 기획하고 있다.

보통 전문 배급사를 통해 영화를 극장에 걸지만, 이 영화는 김 감독 회사가 직접 극장들과 접촉했다. 방송사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배급사들한테 <트루맛쇼> 배급으로 괜한 불이익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김 감독은 “한 대형 복합상영관에 상영 의사를 타진해보니 ‘솔직히 (방송사가) 겁이 난다’는 반응도 있었다”고 했다. 개봉 초기부터 쏟아지는 관객들의 호응에 비하면 전국 11개 상영관 수가 너무 적게 느껴진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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