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훈(42·사진 오른쪽) 감독, 신카이 마코토(38·왼쪽) 감독
안재훈-신카이 마코토 ‘한·일 애니감독의 만남’
“작품속 아름다운 풍경은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치유와 구원 위한 장치죠”
“할리우드 영화들에 밀려 한국 애니 상영관수 급감 관객들 보기 불편해져”
“작품속 아름다운 풍경은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치유와 구원 위한 장치죠”
“할리우드 영화들에 밀려 한국 애니 상영관수 급감 관객들 보기 불편해져”
안재훈(42·사진 오른쪽) 감독은 수첩을 꺼냈다. 마주앉은 이의 모습을 그려주는 건 오래된 그의 습관이다. 수첩 속 그림의 모델, 신카이 마코토(38·왼쪽) 감독이 의아한 듯 물었다. “한국엔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편수가 적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도 적고, 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터도 적다는데, 그림이 너무 정교했어요.”
지난달 23일 개봉한 안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을 최근 보고 “너무 놀랐다”는 것이다. 안 감독은 “(기획 등 총 제작기간 11년 중) 7년간 스튜디오에 매일같이 출근하면서 하루 16시간 넘게 작업을 했다. 내 얼굴이 하얀 것은 햇빛을 거의 받지 못해서”라며 웃었다. 신카이 감독은 “어떻게 이런 작품이 나왔을까 신기하다”는 말을 더 보탰다.
<소중한 날의 꿈>에서 세심한 그림체와 서정적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며 침체된 한국 애니메이션에 활기를 불어넣은 안재훈 감독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신카이 감독을 21일 서울 애니메이션센터 앞 카페에서 함께 만났다. <소중한 날의 꿈>은 24일 끝난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의 장편 경쟁부문에 올랐고, 신카이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별을 쫓는 아이>는 개막작으로 초청됐다.
게임회사를 다니다 28살에 애니메이션계에 뛰어든 신카이 감독은 <별의 목소리> <초속 5㎝> 등의 작품으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다음달 25일 국내 개봉할 <별을 쫓는 아이>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와 협업한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으로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고 믿는 ‘지독한 감성주의자’들인 둘의 작품은 꽤나 닮아 있다. 할리우드 3디(D) 애니메이션이 판치는 상황에서 2디 화면에 아름다우면서도 사실적인 풍경을 채색하고, 상처 입은 등장인물들의 마음에 위로를 보내는 따뜻한 이야기 흐름이 그렇다.
“풍경에 정성을 들이는 건 (관객에게) 마음의 선물을 주고 싶어서입니다. 후배들에게 나랑 작업하면서 <쿵푸 팬더> 같은 대작을 할 순 없다고 말하곤 하지만, 우리의 풍경과 사람을 유심히 보고 그렸던 정성이 손에 깃들여지면 이것이 나중에 월트디즈니 등에 진출했을 때도 애니를 대하는 정성의 근간이 될 것입니다.”(안재훈)
“제 작품 속 아름다운 풍경은 사랑과 만남이 이뤄지지 않거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 등을 겪은 인물들에 대한 치유와 구원의 장치이기도 하죠.”(신카이 마코토)
<소중한 날의 꿈>에서 고교생 이랑과 철수는 ‘공룡 발자국’을 찾아나서는 판타지 장면을 통해 한뼘 성장한다. <별을 쫓는 아이>는 소녀가 ‘지하세계’란 가상 공간에서 모험을 벌이면서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다. 안 감독은 “힘이 센 공룡만이 아니라 결국 걷고자 했던 공룡이 발자국을 남기는 것처럼, 멈추지 않고 걸을 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신카이 감독도 “소중한 사람을 잃은 소녀 등이 지하세계 여정을 통해 상실감을 스스로 극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별을 쫓는 아이>는 지난 5월 일본 개봉에 이어 한국 개봉까지 앞두고 있다. 이와 달리, <소중한 날의 꿈>은 <트랜스포머3> 등 대작들이 극장가를 휩쓸면서 상영관 수가 급격히 쪼그라든 처지다. 안 감독은 “관객들이 보기 불편해진 게 아쉽다. 관객들에게 이 작품의 원화 10만장을 나눠주고 있는데, 아직 6만여장이 남았다. 다 나눠드릴 때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신카이 감독은 “사실 내 작품도 수입의 70% 정도는 디브이디(DVD) 판매 등이다. 애니의 소비자층을 두텁게 확보해가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내놓았다.
신카이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국 애니는 장면과 동작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묘사하는데, 그건 요즘 일본 애니가 잃어가고 있는 점”이라고 짚었다. 이에 대해 안 감독은 “한국 애니가 그림은 좋은데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스토리 등에 대한 기획력은 좋은데,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손’(애니메이터)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안 감독은 “한국 애니의 앞세대가 (일본 애니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려주는) 오이엠(OEM·주문자생산) 방식으로 일본과 소통했다면, 이젠 서로의 작품에 대한 철학과 이야기로 소통하면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물론, 못말리는 감성주의자들답게 둘은 “다음엔 술 한잔하며 얘기를 나누자”는 기약도 빠트리지 않았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안재훈 ‘소중한 날의 꿈’
신카이 마코토 ‘별을 쫓는 아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