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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그 아이들의 ‘소리없는 비명’ 삼켜버리는…

등록 2011-09-08 20:46수정 2011-09-28 15:42

A scene of The Crucible
A scene of The Crucible
실화 바탕 영화 ‘도가니’
인화학교 장애인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 집유로 풀려나 복직
공지영 소설 토대로 재구성
주연 공유 “분노로 심장이 쿵쾅”
29살에 입대했던 배우 공유(33)는 군대 시절 병장 진급 선물로 지휘관한테서 책 한권을 받는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가해자)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기사 한 줄에 이끌려 썼다는 공지영 작가의 실화소설 <도가니>였다.

공유는 전역 전 마지막 휴가를 나와 영화제작사 대표에게 이 소설의 영화화를 제안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을까’란 생각에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일었고, 심장이 쿵쾅거렸기” 때문이었다. 엄용훈 삼거리픽쳐스 대표는 “영화화를 원하는 제작사 중에 가장 늦게 제안서를 출판사에 냈었다”며 “공유의 생각이 담긴 27쪽짜리 제안서를 본 공 작가가 영화화에 대한 공유의 진정성 등을 높이 산 것 같다”고 했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도가니>(청소년관람불가)는 2000~2004년 광주광역시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7~22살 청각·지적장애 학생들에 대한 교장과 교직원들의 성폭행 실화를 다룬 같은 제목의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는 소설처럼 가상의 전북 무진시 자애학원으로 무대를 옮겨 잊혀져가는 사건을 되살려낸다.

미술교사로 부임한 ‘강인호’(공유)는 자욱한 안개가 깔린 지방도시 ‘무진’처럼 빛을 잃은 아이들의 눈과 마주한다. 재잘대는 아이들의 말을 듣기 힘든 이곳에서 인호가 듣는 첫 소리는 화장실에서 새나오는 ‘여학생의 비명’이다.

<도가니>는 상영 내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찌른다. 관객은 아이들이 무자비한 어른들의 힘에 눌려 몹쓸 짓을 당하는 모습과, “그 사람들 벌 줄 수 있어요?”란 지극히 당연한 아이들의 소망이 추잡한 사회권력에 의해 다시 상처받는 광경을 빠짐없이 목격해야 한다. 차라리 지어낸 얘기라고 믿고 싶은 이 영화가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는 사실에 감정이 옮아가면 관객의 마음은 더없이 참담해질지 모른다.

영화는 그 흔한 유머코드도 없다. 하지만 인터넷 연재 당시 1600만 조회수에, 단행본도 40만여부나 팔렸다는 소설 못지않게 관객을 125분간 끌고 가는 힘을 보여준다. 영화는 돈으로 사건을 덮으려는 가해자들, 그들의 변론을 맡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를 위한 전관예우 판결, 결국 정의를 내려놓는 검찰 등 권력의 추악함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법정에서 침착히 피해 상황을 수화로 진술하는 아이들의 용기와 눈망울에 박수와 눈물을 보내게 된다. 공유와 인권센터 간사 역을 맡아 아이들의 싸움을 돕는 정유미는 이 작품을 통해 연기 폭을 몇 뼘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이 싸움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대목에서 마음이 더 뜨거워질 것이다.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나온 가해자들의 일부는 학교 교직원으로 복직했고, 사건을 알린 직원은 해임됐으며, 피해자들에게 약속한 치유와 보상 등은 지켜지지 않았다. 학교는 여전히 수십억원의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영화적으로만 본다면, 악의 편에 선 인물들을 철저히 악하고 공포스러운 사람으로 단순화한 면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영화보다 더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란 것을 아는 관객들에겐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성폭행 등을 당하는 아역 배우들의 연기 장면이 다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황동혁 감독은 “아역들이 촬영할 때 부모님들을 항상 입회시켰고, 아역 배우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신경 썼다”며 “이 영화를 통해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관객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 속 강인호는 이 싸움을 마지막까지 하지 않고 야반도주하듯 무진을 떠나는 원작소설과 달리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면서도 시민을 향해 외친다. “(이 아이는)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아이입니다….” 이 말은 아이들이 수화로 전하고 싶었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그들의 분노를 함께 말하려 하지 않았던 우리의 무심함을 향해 던지는 외침으로 들려온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삼거리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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