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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8월의 크리스마스’ 심은하

등록 2005-07-20 20:03수정 2006-03-23 16:20

스크린속의나의연인
‘다림’ 을 만나는 순간 가슴에 멍으로 남은 첫사랑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이었다

세상에는 첫사랑에 관해 영원히 변하지 않을 두 가지 명제가 존재한다.

하나는 첫사랑은 실패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죽을 때까지 첫사랑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는 것.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슬픈데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더 슬픈지.

아무리 차가운 이성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는 한, 사람은 어느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첫사랑에 관한 한 이것은 세 번째 명제가 되지 않을까?

한 소녀를 너무나 끔찍하게 사랑한 적이 있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좋아하던 소년 시절의 나는 <소나기>의 그 소년처럼 소녀와 잠시 동안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긴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에 돌아서야 했던 소녀의 그 때 그 뒷모습만을 기억하며 살아야 했다. 소녀의 기억은 그대로 내 가슴에 멍이 되어 남았고 나는 시간으로 멍자국을 조금씩 지워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시간은 어떻게든 흘렀고 난 어느 새 전역을 앞둔 군인이 되어 있었다. 군대에서 난 그렇게도 내게 괴로운 기억을 안겨줬던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휴가를 나오던 날 나는 우연히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봤고, 잊고 있던 첫사랑의 기억과 다시 만났다. 군대라는 낯선 시간을 살고 있던 나는 죽음이라는 낯선 시간을 준비하는 정원(한석규)과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고 그 곳에서 다림(심은하)를 만나는 순간 난 이미 시간의 터널을 지나 그 때 그 소녀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지내왔건만 난 나도 모르게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힘들게 지내온 딱 그 시간만큼의 시간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이미 정원과 하나가 돼버린 난 다림이가 팔짱을 끼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고 다림이가 곱게 눈을 흘기면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 그렇게 타임머신을 타듯 다림이를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 이윽고 호흡이 곤란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내 마음을 훔쳐본 것처럼 정원이 읊조리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만은 추억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그 순간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보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그 한 마디가 그대로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가슴은 답답한데 눈물까지 비오듯 흘러내려 더없이 어지럽기만 해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나서도 그대로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으로도 씻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을 눈물에 섞어 조금씩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날 그 둔기에 맞은 듯한 몽롱함은 이후 그 어떤 영화나 상황 속에서도 더이상 느낄 수 없었다.

20대의 꽤 오랜 시간 동안 첫사랑의 끈을 놓지 못하고 힘들어 하던 내게 그 끈을 놓게 해준 ‘다림’, 심은하.

내년쯤엔 새로운 모습의 다림이를 볼 수 있을까?

강릉 엠비시 보도부 김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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