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리하우스 카페에서.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출연한 배우 임수정.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내 아내의 모든 것’ 주연 임수정
주부 ‘정인’역 맡아 독설 속사포
“내 빠른 말투에 나도 놀랐어요”
선배들 ‘아내 원망’ 연기에 참고
사람마음 관심 많아 카를 융 공부
주부 ‘정인’역 맡아 독설 속사포
“내 빠른 말투에 나도 놀랐어요”
선배들 ‘아내 원망’ 연기에 참고
사람마음 관심 많아 카를 융 공부
3초.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는 것도 같았다. 배우 임수정(33)의 말과 말 사이엔 자주 ‘3초’의 쉼표가 생겼다. 영화 속 자신이 연기한 ‘정인’을 설명할 때도, 본디는 연기에서 자율성을 추구하지만 이번엔 “민규동 감독님을 믿고 나 자신을 다 던졌다”라고 말할 때도 그는 골똘히 생각하며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만들었다. 결혼 7년차 주부인 정인은 잠시도 쉬지 않고 속사포처럼 독설을 쏟아내지만, 영화 밖의 자연인 임수정은 모든 음절을 천천히 꼭꼭 씹으며 말을 이어갔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17일 개봉)의 임수정을 지난 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는 종일 불평하고 화만 내는 정인에게 질렸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할 용기가 없는 남편 두현(이선균)이 ‘마성의 카사노바’ 성기(류승룡)에게 ‘아내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하게 그린다. 영화의 재미 대부분은 임수정과 류승룡의 연기에서 나온다. ‘마초 같은 태도로 여성들을 사로잡는 육식남’과 ‘단무지·가지 같은 형광색 음식은 먹지 않는 초식남’의 면모를 모두 지닌 성기 캐릭터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끄러운 여자 정인과 어우러져 영화의 다소 산만한 흐름 속에서도 빛을 발하면서 폭소를 자아낸다.
정인은 “예의는 지켜도 눈치는 안 보는” 독설가다. 남편 회사 부부 동반 모임에서 정인에게 ‘아랫사람’의 아내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는 ‘윗분 사모님’들의 예의없는 행태부터 돼지가 귀엽게 웃으면서 돼지고기를 굽는 모습의 삼겹살집 간판까지 한마디 지적하고 반박해야 직성이 풀린다. 할 말이 많으니 말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임수정은 “저도 제가 그렇게 빨리 말을 할 줄 몰랐어요”라며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정인의 대사가) 일상의 언어라기보단 논리적으로 따지는 언어라서 어려웠어요. 전부 제 생각과 같은 건 아니었지만 정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그 덕분인지 정인이라는 독특한 인물은 서른셋 임수정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설득력 있게 표현된다. 그가 경험하지 않은 ‘결혼 생활의 권태와 신경증’은 “두 선배님들(이선균·류승룡)과 남자 스태프들이 ‘우리 마누라도 맨날 나한테 저렇게 투덜거려. 울었다 웃었다가 그래. 우리 마누라는 이래’라며 원성을 내뱉었던 상황”을 참고했단다.
극중 정인은 집에 있을 때 브래지어 없이 헐렁한 티셔츠에 팬티만 입고 있길 좋아한다. 브래지어의 압박을 집에서 훌훌 벗는 건 여러 여자들의 자연스런 습관. 생활감이 묻어난 옷차림이 좋았다고 말하자, 임수정은 “남자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내가 볼륨이 없어서 그런가봐. 속상해(웃음)”라며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는 영화에서 다른 남자를 이용해 아내(정인)를 떼어 내려는 ‘비겁한’ 남편에 대해 “철이 없어서 그래요”라고 간명하게 ‘평가’한다. 언제까지나 예민한 소녀일 것만 같았던 이 배우는 어느새 ‘쿨하게’ 자기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비겁한 남자들’을 “귀엽다”고 말할 줄 아는 ‘30대 언니’로 변해 있었다. 정인이 그런 철없는 남편을 끝까지 귀여워해 주고 보듬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영화의 결말에 대해선 이 언니, 어떻게 말할까?
“사실은 남자들의 로망 아닌가요?”
임수정은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아 책을 찾아 읽고, 교수님도 만나면서” 5년 넘게 심리학을 독학하고 있다고 했다. 카를 융을 좋아한단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번씩 강릉에 가서 바리스타 수업을 받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느라 “(작품을) 쉴 때도 바쁘다”고 한다. 다음 작품으로 “드라마와 영화 모두 검토 중”인데, “공포, 스릴러 같은 장르영화를 해 보고 싶고, 의외로 에로틱한 작품이나 치정극 제안도 들어온다”고 하니, 조만간 그의 새로운 변신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글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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