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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세 감독의 ‘불운’이 더 안타까운 이유

등록 2012-05-13 20:34

이명세 감독
이명세 감독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이명세(사진) 감독은 결국 해고되었다. 몇 주 전 이 칼럼에서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으로서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한 것은 아닌지 가책이 든다. 글로 이 문제를 공론화시킨 것은 좀더 생산적인 논쟁을 기대한 것이었으나 상황은 무의미한 진실 공방으로 흘렀다. 이명세 감독이 100억원 예산의 영화를 찍으면서 무리하게 자신의 예술적 고집을 부린 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감독은 분명한 밑그림을 그려놓고 있었는데 제작사와 투자사 쪽에서 섣불리 흥행성 제로라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애초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약간 놀란 것은 이 사건을 두고 영화계와 대중이 보인 반응이었다. 많은 언론은 선정적으로 양쪽의 말을 지면에 실어 나르면서 불구경하기에 바빴다. 마음만 먹는다면 시나리오와 현재까지 찍은 필름과 양쪽의 발언을 취재해서 종합적으로 상황을 재구성하고 해석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영화계, 특히 이해당사자인 감독들에게서도 공식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다들 사석에서 누가 더 잘못했는지 잘잘못을 가리기만 했다. 온라인 관련 뉴스에 달린 대중의 반응은 대체로 냉소적이었다. 상대적으로 많은 돈을 들인 영화에 감독이 예술적 주관을 고집하는 건 웃긴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자기가 원하는 걸 만들려면 홍상수처럼 저예산 작가주의로 가라는 식이었다.

이명세는 흥행감독이 아니었다. 그는 서너 편의 흥행 실패작 뒤에 대박을 터뜨리는 사이클로 작업해왔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성공을 보기 위해서는 <첫사랑>, <남자는 괴로워>, <지독한 사랑>의 지독한 흥행 실패를 겪어야 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미국에 건너갔으나 그곳에서 새 영화를 찍지 못한 그는 귀국해 <형사>와 <엠>으로 자기 서명을 작품에 남겼으되 대중에게는 다가서지 못했다. 그는 젊은 관객에게 점점 잊히는 이름이 되고 있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의 운명을 그도 비켜가지 못하는 건 아닌가, 이명세의 팬으로서 초조감이 든다.

이명세처럼 경험 많은 감독이라도 타고난 유전자 때문에 작품 연출에 돌입해 불도저처럼 자기 주관을 밀어붙였다면 그건 충분히 견제 사유가 된다. 여하튼 그걸 제어할 수 있는 제작진의 지휘능력이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한국 영화계에는 없는 모양이다. 장수하는 감독은 장수하는 제작자와 같은 배를 타야 한다. 2000년대 중반까지 숱한 예술적 모험을 감행했던 한국 영화계는 <지구를 지켜라>와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는 제작 여건을 이미 잃어버렸다. 이제 그런 영화를 만들어도 대중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하는 무모한 야심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부 대중의 반응대로 그런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는 감독이나 여타 창작자들은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 시장이라는 게토로 몰아넣어야 할까. 좀더 끈질기게 주류 산업 안에서 감독과 제작자의 창조적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일까.

투자사 관계자들과 제작사 임원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최근 흥행하는 한국 영화들 가운데 기획 단계부터 성공을 확신한 영화는 몇 편이나 되는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만든 <도가니>, <부러진 화살>은 물론이고 10여년 동안 충무로에서 구박받던 기획과 시나리오로 만든 <건축학개론>은 보기 좋게 성공을 거두었다. 불운하게도 이명세는 그런 권토중래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사태의 전말을 알 수 없는 나는 이명세가 이번 영화로 충분히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에 아쉬움이 크다. 그가 불사조처럼 일어서기를 바랄 뿐이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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