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길 감독
‘내가 살인범이다’ 정병길 감독
살인범과 형사 7분여 추격전땐
카메라 든 스턴트맨 함께 낙하
액션스쿨 선배들 선뜻 대역출연 만화같은 격투·레이싱같은 속도…
“다음엔 더 센 걸로 준비해야겠죠”
“부끄럽지만 ….”
이 말 끝에 정병길(32) 감독은 “한글도 13살 정도에 깨쳤고, 학교성적도 뒤에서 1%였다”고 했다. 영화 정규교육을 이수한 적도 없다. 27살에 중앙대(영화전공)에 들어갔지만 세 학기만 다녔다. 오히려 그는 “9살까지 전북 남원에 살며 개구리 잡고, 한글을 잘 몰랐지만 동화책 그림으로 상상력을 키우고, 만화랑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머릿속에서 어떤 이미지를 영상 화면으로 연결시킬
수 있게 된 것”, 그 모두를 영화 일을 하는 ‘자양분’이라 여긴다.
무엇보다 “배우도 하고 연출도 해보려고” 2004년 서울액션스쿨 8기생으로 들어간 게 영화와 가까워진 계기가 됐다. 스턴트맨 동기생의 얘기를 다뤄 화제를 모은 다큐멘터리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2008) 등을 연출하며 현장에서 영화를 익혀갔다.
그 자신이 ‘액션연기’를 배웠기에,
8일 개봉하는 <내가 살인범이다> 제작과정에서 “예산(순제작비 38억원)이 넉넉하지 않으니 액션장면 하나 정도는 빼자”는 말이 나왔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1일 서울 시내에서 만난 그는 “어? 액션이 새로운데?”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 시작과 함께 최형구 형사(정재영)와 살인범이 비 내리는 골목에서 7분여간 펼치는 추격액션은 “관객의 심장도 뛰게 하고 싶었다”는 말처럼, 관객도 함께 쫓고 쫓기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살인범이 공중에서 뛰어내릴 땐, “다른 스턴트맨이 촬영감독 대신 카메라를 들고 같이 떨어지며” 그 순간을 담았다. “카메라 앵글만 좀더 신경 써주면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 스턴트맨들의 액션이 살아난다”는 걸, 적어도 그는 알고 있어서다.
영화 중반 달리는 차 위에서 ‘떨어질 듯 말 듯’ 치고받는 격투는 “만화적이면서도 역동적이고 오락적인 액션장면”이라 했다. 차 밑에도 카메라를 달았는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 스턴트맨들이 외국 스턴트맨들보다 차를 더 빨리 모는 실력인데도 외국 영화보다 좀 느린 속도로 나오죠. 카메라를 밑에 달아만 줘도, (속도감이) 더 무섭게 전해지거든요.”
액션스쿨 동기생이 무술감독을 맡았고, “자신을 가르쳐준 스승이었던 선배들이 (자신한테) 존댓말까지 써주며 스턴트 대역연기자로 출연했다”고 한다.
그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인 <내가 살인범이다>는 생동감 넘치는 액션과 범죄스릴러의 긴박감, 몇몇 코믹장면들이 느슨함 없이 버무려졌다. 단편·다큐영화 연출이 고작인 그에게 대기업 투자·배급사 쇼박스가 제작을 제안한 이유다.
영화는 연쇄살인죄 공소시효가 지난 뒤 “내가 살인범”이라며 참회하는 책을 낸 이두석(박시후)과, 이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최형구 형사의 대립을 그린다. 영화는 ‘잘생긴 이두석’한테 열광하는 여론과 그의 인기를 이용하려는 미디어의 행태도 건드린다. 피해자 가족의 복수와 분노 등 많은 것을 한 보따리에 담으려는 버거움도 느껴지지만, 이두석과 최형구를 둘러싼 반전이 드러나면서 영화 몰입도는 높아진다.
“(연쇄살인을 다룬) <살인의 추억>(2003)을 극장에서 보다 옆의 옆에 앉은 아저씨가 범인일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이 범인이 책을 내면 어떨까란 생각을 하게 됐죠.” 실제로 1980년대 일본에서 사가와 잇세이란 사람이 자신의 살인범행을 토대로 쓴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을 알고는 “섬뜩했다”고 한다. 80년대 북한의 김현희씨가 비행기를 폭파했을 때 외모까지 화제가 되며 옹호여론이 생긴 것도 떠올리며, “내가 구상한 영화가 말도 안 되는 것은 아니란 자신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살인죄의 경우 현재 25년까지 연장된 공소시효가 폐지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몇몇 영화 설정들의 현실성 여부에 대해선, “영화의 리얼리티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 스크린 안에서 믿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외국영화 <쥐라기 공원>을 보고, 공룡을 본 적 없는 관객들이 ‘진짜 공룡을 본 것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자들이 신인 감독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촬영 사전 단계에서 철저히 준비도 했지만, 배우 정재영 선배가 ‘감독이 잘 만들고 있으니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믿어 달라’고 잘 막아줬다”며 고마워했다. 만화가인 친형(정병식)이 연출한 독립 장편영화 <몽키즈>(내년 개봉 예정)에 배우로도 출연한 그는 “관객들보다 반 발짝만 앞서가며 새로운 걸 보여주면서도, 관객들이 끝까지 집중하며 즐거워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번 영화에 눈높이가 맞춰진 관객들이 다음엔 더 센 액션을 원할 텐데”라 말하는 그는 마치 영화의 재미를 놓고, 관객과 치열한 심리싸움의 액션을 즐기는 듯 보였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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