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 쩨쩨한 악당과 4대1로 싸우다
우주탐험 도중 방사선 노출, 유전자 변이 일으키며
초능력 갖게된 ‘영웅’ 들 악의 화신과 맞서 싸운다
만화 원작 44년만에 영화화
초능력 갖게된 ‘영웅’ 들 악의 화신과 맞서 싸운다
만화 원작 44년만에 영화화
“슈퍼 히어로라고 팀을 이루지 말란 법이 있는가!” 마블 코믹스의 만화 <판타스틱4>의 원작자 스탠 리는 이런 제안을 받고 4명의 슈퍼 히어로를 한 팀으로 묶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만화 <판타스틱4>는 지난 44년 동안 세계적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 베스트셀러 만화는 화려한 상상력을 재현해줄 영화기술의 발전을 10년 넘게 기다린 뒤에야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4명의 슈퍼 히어로가 팀을 이루면 영화의 재미도 4배로 커질까?
천재적인 과학자 리드(이안 그루퍼드)와 그의 단짝 비행사 벤(마이클 쉬크리). 두 사람은 라이벌격인 대학동기 빅터 본 둠(줄리안 맥마흔)의 지원으로 우주탐험에 나선다. 그리고 리드의 옛 애인이며, 빅터의 약혼녀이기도 한 과학자 수(제시카 알바)와 수의 동생 자니(크리스 에반스)도 탐험에 동행한다. 하지만 우주 폭풍에 접근하는 속도가 잘못 계산되는 바람에, 우주선은 방사선 구름에 뒤덮히고 만다.
사고 뒤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네 사람. 고무처럼 몸이 늘어나게 된 리드는 ‘무한능력 판타스틱’으로, 방패막과 강풍을 일으키는 투명인간이 된 수는 ‘투명본능 인비져’로 재탄생한다. 또 자니는 활활 타오르면서 쏜살같이 날아다닐 수 있는 ‘불의 전사 파이어’로, 벤은 가공할 힘과 암석처럼 단단한 근육으로 둘러싸인 ‘막강파워 씽’으로 변한다. 그리고 탐험에 동행했던 또 한사람 둠. 그는 온 몸이 차가운 금속으로 둘러싸인 악의 화신 ‘닥터 둠’으로 변해 ‘판타스틱4’를 위협한다.
배트맨 같은 예외가 있기도 하지만 슈퍼 히어로들이 탄생하는 과정은 대부분 과학 바깥에, 이성 너머에 존재한다. 그리고 슈퍼 히어로의 활약상을 그저 즐기고 싶을 뿐인 약삭빠른 관객들은 영웅들의 탄생 과정을 굳이 문제삼지 않는다. <판타스틱4>에서 동료들과 자신을 원상태로 돌려 놓기 위해 애쓰는 천재 과학자 리드의 밤샘 투혼은 영화의 큰 축이기도 하며 충분히 눈물겹기도 하다. 하지만 조야한 발전기를 통해 우주폭풍을 재현한 뒤 변형된 유전자를 되돌린다는 비과학적인 설정을 무리하게 늘어놓는 것은, 공상과학 판타지라는 장르를 염두에 두고 봐도 억지스럽다.
또 4명의 슈퍼 히어로들이 버겁게 상대하는 악당의 ‘악질적인 포부’나 ‘위력’이 1인 영웅 영화 속 악당들의 4분의 1에도 못미친다는 것도 <판타스틱4>의 약점. ‘악의 화신’ 닥터 둠의 당면한 목표는 자신의 회사를 부도낸 투자자들에게 복수하고 ‘판타스틱4’들을 위협하는 것. 악당의 목표가 지나치게 겸손하다 보니, 그 악당을 상대하는 슈퍼 히어로들의 활약도 어쩐지 시시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타스틱4>는 지난달 초 미국 개봉 첫 주에만 56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원작의 명성 덕을 톡톡히 봤고, 할리우드 새로운 섹시 아이콘 제시카 알바의 매력에 힙입은 바 크다. ‘판타스틱4’의 활약을 뒷받침하는 특수효과도 최근작 블록버스터들에 비해 별로 놀랍지는 않지만, 10년을 기다렸다는 ‘영화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데는 무리가 없다. ‘불의 전사 파이어’가 손바닥 위에서 팝콘을 튀긴다거나, ‘투명본능 인비져’의 속옷만 눈에 보인다거나 하는 에피소드는 귀엽고 재치있다. 11일 개봉.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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