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온 편지>는 수줍고 어두운 9살 소녀 라셸과 그의 가족이 친구 발레리와 그 가족을 만나면서 진정한 우정과 가족애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은 잔잔하고 따뜻한 힐링 영화다.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제공
[문화‘랑’]영화
프랑스 영화 ‘나에게서 온 편지’
따뜻한 감성이 주는 카타르시스
프랑스 영화 ‘나에게서 온 편지’
따뜻한 감성이 주는 카타르시스
누구에게나 생애 처음으로 ‘진정한 우정’을 가르쳐 준 친구가 있다. 천진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오래된 흑백영화 속 주인공처럼 슬며시 떠올라 웃음을 짓게 만드는. 프랑스 영화 <나에게서 온 편지>(감독 카린 타르디유)는 그런 친구와 함께한 유년의 이야기로, 9살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과 인간관계를 따뜻하고 반짝이는 감성으로 그려낸 ‘힐링 영화’다.
9살 라셸(줄리엣 곰버트)은 개학 전날 밤, 학교에 늦을까봐 옷을 입고 가방까지 메고 잠자리에 들 만큼 걱정이 많은 소녀다. 라셸의 엄마 콜레트(아녜스 자우이)는 인스턴트음식만 먹이는 엄마 밑에서 방치된 채 자라, 딸인 라셸에게는 지나칠 정도의 애정을 쏟아붓는다.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내가 어릴 땐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아빠 미셸(드니 포달리데스) 역시 나름의 상처를 지녔다. 그래서일까? 라셸은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우리 엄마가 죽어 너네 엄마가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위로랍시고 건네는 등 다소 독특하고 불안한 정신세계를 지녔다.
하지만 개학 첫날, 짝꿍으로 만난 명랑소녀 발레리(안나 르마르상)와 친구가 되면서 라셸은 점차 그의 발랄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발레리는 라셸과 함께 망쳐버린 시험지 몰래 바꿔치기, 심술궂은 선생님의 데이트 장소 미행하기 등 갖은 장난을 일삼으며, 라셸의 수줍고 어두운 내면을 9살 소녀의 그것으로 바꿔놓는다. 발레리의 등장으로 바뀐 것은 라셸뿐만이 아니다. 아름답고 다정한 싱글맘인 발레리 엄마 까뜨린(이자벨 카네)은 라셸의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9살 라셸과 발레리의 엉뚱 솔직한 입담과 행동으로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낸다. 무려 6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줄리엣 곰버트와 안나 르마르상의 깜찍한 외모, 천연덕스런 연기엔 저절로 ‘엄마(아빠)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타인의 취향>으로 잘 알려진 감독 겸 배우 아녜스 자우이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세심하고 깊이 있는 연기도 일품이다. 여기에 <라붐>의 주제곡이자 한국에 복고열풍을 불러온 <써니>에도 삽입된 리처드 샌더슨의 ‘리얼리티’ 등의 음악은 80년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나에게서…>는 여러모로 지난 1992년 개봉했던 영화 <마이 걸>을 떠올리게 한다. 진정한 친구와의 우정을 그린 점, 가족애를 깨달으며 한 소녀가 성숙해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영화라는 점, 그리고 가슴 먹먹한 결말이 주는 카타르시스까지도 닮아 있다. ‘순수의 시대’를 추억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반가운 영화가 될 듯하다. 8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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