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는 코믹첩보영화의 고전인 <트루 라이즈>의 설정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여기에 한국적 정서를 녹여냈다. 추석시즌, 가족 단위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내려는 전형적인 ‘한국형 오락영화’다. 딜라이트 제공
[문화‘랑’]영화
코믹액션 ‘스파이’ 추석 겨냥 개봉
1994년 슈워제네거 작품 설정 빌려와
설경구, 문소리 연기 호흡 척척
시월드 등 자화상 반영 웃음 끌어내 ‘007 제임스 본드’를 능가하는 스파이도 결국 한 여자의 남편일 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파이지만, 김철수(설경구)는 소말리아 해적이 쏘아대는 총알보다 ‘마누라’의 전화벨 소리가 더 무섭다.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 안 되면 몸으로 때워라 등 ‘협상의 법칙’도 폭풍 잔소리를 쏟아내는 아내에겐 무용지물. 철수의 마누라 안영희(문소리)는 남편의 ‘정체’를 꿈에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필 2세를 만들기 위해 받아놓은 ‘디데이’에 철수는 국가의 명운을 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타이로 출장을 가게 되고, 우연찮게도 스튜어디스인 영희 역시 비행을 위해 타이로 날아간다. 여기에 잘생긴 의문의 사나이 라이언(다니엘 헤니)이 영희에게 추파를 던지며 작전 지역마다 모습을 드러내자, 철수는 질투에 휩싸인 나머지 국가적 위기 앞에 ‘사랑과 전쟁’을 찍는다. 과연 철수는 영희를 지키면서 임무까지 완수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만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줄거리다. 한국영화 <스파이>는 1994년 국내에 개봉했던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트루 라이즈>의 기본 설정을 그대로 차용했다. 심지어 헬기에서의 격투 장면이나 영희의 총기난사 장면 등 일부 장면은 아예 판박이다. 10~20대의 젊은 관객들에겐 다소 생소하겠지만, 30대 이상의 관객들 사이에선 ‘코믹첩보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니 설정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스파이>는 여기에다 한국 관객들의 입맛에 착착 감기는 여러가지 양념을 첨가해 버무리며 ‘낯익은 설정’이 가지는 약점을 극복하려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대한민국의 남편·아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세밀한 상황 묘사’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시월드에 구박을 당하고, 출장으로 외박을 일삼는 남편에게 “더이상 이렇게는 못 산다”며 바가지를 긁는 영희의 모습은 대한민국 아내(며느리) 모습의 전형이다. 또 일에 치이면서도 동시에 마누라 눈치를 봐야 하고, 마누라에게 연봉이나 월급을 속이는 철수의 모습 역시 대한민국 남편의 자화상이다. 영화는 일상에서 남편과 아내가 겪는 소소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풀어놓아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내면서 ‘내 이웃 같은 스파이’라는 새로운 설정을 각인시킨다.
또 한가지 영화를 살리는 것은 의외로 ‘맞춤 옷’을 입은 듯한 문소리의 코믹 연기다. 남편의 정체를 짐작하고도 남을 상황임에도 혼자 시종일관 어리둥절해하는 그의 모습에 관객들은 ‘빵’ 터질 수밖에 없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이후 10년 만에 다시 만난 문소리와 설경구는 “함께 찍는 장면에서는 서로 리허설 한번 하지 않고 애드리브까지 넣어 곧바로 촬영에 임했다”고 할 만큼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여기에 ‘명품조연’ 고창석(진실장)·라미란(야쿠르트 요원)의 톡톡 튀는 개성만점 연기는 영화에 윤기를 더하는 마지막 요소다.
아쉬운 점도 있다. 지나치게 복잡하다 싶을 만큼 여러번 꼬이는 ‘국가적 위기상황’은 ‘코미디’라는 핵심 요소에 얹혀 가야 할 ‘첩보물’이라는 곁가지에 감독이 너무 큰 욕심을 낸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코믹물이 인기를 끄는 추석시즌을 겨냥한 영화임을 고려하면, <스파이>는 가족끼리 깔깔 웃으며 극장을 나서기엔 부담 없는 전형적인 한국형 오락영화인 듯싶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1994년 슈워제네거 작품 설정 빌려와
설경구, 문소리 연기 호흡 척척
시월드 등 자화상 반영 웃음 끌어내 ‘007 제임스 본드’를 능가하는 스파이도 결국 한 여자의 남편일 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파이지만, 김철수(설경구)는 소말리아 해적이 쏘아대는 총알보다 ‘마누라’의 전화벨 소리가 더 무섭다.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 안 되면 몸으로 때워라 등 ‘협상의 법칙’도 폭풍 잔소리를 쏟아내는 아내에겐 무용지물. 철수의 마누라 안영희(문소리)는 남편의 ‘정체’를 꿈에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필 2세를 만들기 위해 받아놓은 ‘디데이’에 철수는 국가의 명운을 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타이로 출장을 가게 되고, 우연찮게도 스튜어디스인 영희 역시 비행을 위해 타이로 날아간다. 여기에 잘생긴 의문의 사나이 라이언(다니엘 헤니)이 영희에게 추파를 던지며 작전 지역마다 모습을 드러내자, 철수는 질투에 휩싸인 나머지 국가적 위기 앞에 ‘사랑과 전쟁’을 찍는다. 과연 철수는 영희를 지키면서 임무까지 완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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