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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야스쿠니>와 닮은 <천안함>?

등록 2013-09-19 11:04

1997년 자신의 아파트 아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 왼쪽은 다큐멘터리영화 <야스쿠니> 포스터. 사진=이타미 주조 프로덕션 제공
1997년 자신의 아파트 아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 왼쪽은 다큐멘터리영화 <야스쿠니> 포스터. 사진=이타미 주조 프로덕션 제공
5년 전 일본서 벌어진 사태와 흡사한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보수우익 폭력적 압력 기승 부리는 일본 닮아가나

“시사회 단계부터 위협이 감지됐고, 영화 개봉 뒤 프로그래머들한테 욕설과 관객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전화가 지속적으로 걸려와 관객의 안전을 고려해야 했다. 영화 배급사와 협의·합의를 거쳤으며, 갑작스런 상영 중단은 우리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군부의 폭주 허용했던 뼈아픈 과거 

대규모 극장 체인인 메가박스 쪽이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돌연 상영 중단 결정을 내린 배경과 관련해 지난 9월10일치 <한겨레>에 실린 내용이다. 극장 쪽은 외압의 정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지만, 이들의 정체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영화계에서는 ‘북한군 어뢰 공격에 의한 침몰’이라는 정부의 공식 발표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좌초설 등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파헤친 이 영화의 대중 공개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보수세력이나 우익단체를 지목하고 있다.

상영 이틀 만의 중지라는 영화 사상 초유의 이번 사건은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기본 원리가 외부의 폭력에 크게 침범받았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사태라는 게 중론이다. 특히 보수언론의 영화 비판, 정체불명 단체의 상영 중단 협박, 극장 쪽의 중지 조처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이 5년 전 일본에서 한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태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심각한 양상을 띤다. 보수우익의 폭력적 압력이 기승을 부리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한국 사회가 답습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2008년 4월 일본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싸고 큰 파문이 일었다. 중국 리잉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야스쿠니>의 상영을 앞두고 20살 우익 청년이 도쿄 긴자의 영화관에 상영 중지를 요구하는 거리선전 활동을 펼친 것이 발단이 돼, 도쿄·오사카 등 5개 영화관이 상영 중지 결정을 내린 게 배경이다. 이 영화는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인 감독 리잉이 1997년부터 10년에 걸쳐 야스쿠니신사에서 ‘야스쿠니칼’(靖刀) 최후의 장인이 칼 만드는 과정을 중심으로 8월15일 야스쿠니신사 주변의 표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일본 자민당의 이나다 도모미 의원(현 행정개혁상) 등 보수파 의원들은 이 작품이 문화청 산하단체에서 지원금 750만엔을 받은 점을 꼬투리 잡아 “정치적 배경이 있는 영화에 조성금을 지급한 것은 괜찮냐”며 2007년 말 사전 시사회를 요구해 이를 관철했다.

이때를 틈타 일본 보수언론이 비판의 칼날을 휘둘렀다. <산케이신문>은 “중국 쪽이 반일 선전에 사용하는 (일본군이 중국인을 참수한) 사진 등이 사용돼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되는 영화에 조성금이 지출된 것 아니냐”며 논쟁에 불을 붙였다. 개봉을 앞두고는 일본 보수잡지 <주간 신초>가 “중국인 감독이 만든 ‘반일 영화’”라고 아예 낙인찍기에 나섰다.

결국 우익단체의 압력에 굴복한 영화관 쪽이 상영을 중지하거나 연기하는 사태로 발전하자 당시 도카이 기사부로 문부과학상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심히 유감이며, 재발하지 않도록 (문부성으로서도)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그때까지 비교적 담담하게 보도하던 대다수 주류 언론들도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판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옛 일본 군부가 태평양전쟁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아사히신문> 등이 우익의 테러 위협에 굴복해 전쟁 지지 논조로 방향을 선회해 군부의 폭주를 허용했던 뼈아픈 과거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일본 주류 언론의 자성이 제기된 것이다.

표현 자유 너머 감독 타살 의혹까지 

이 와중에 뜻밖의 반전 사태가 벌어졌다. 우익들의 행태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민족우파로 지칭되는 ‘잇수이카이’(一水會)의 기무라 미쓰히로 대표는 “영화를 보고 판단하자”며 우익단체에 사발통문을 보냈다. 이에 따라 2008년 4월18일 도쿄 라이브 하우스인 ‘로프트 플라스원’에서 우익 활동가 110명과 보도진 80명이 몰려든 가운데 시사회가 열렸다. 시사회가 끝난 뒤 품평회의 평가는 예상과 달리 일방적이지 않았다. 다음날 <니혼게이자이> 보도를 보면 “밑에 흐르고 있는 것은 반야스쿠니, 반일의 역사관이다” “문화청이 반일 영화에 조성금을 낸 것은 문제 삼아야 한다”는 예측 가능한 평가도 나왔지만, “반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야스쿠니 반대파보다 민족파 쪽이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참배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면도 있다”는 등 긍정적 평가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이 영화가 문화청의 공적자금을 받은 것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우리도 조성금을 받아서 친야스쿠니 영화를 만들어 반론을 하면 된다”는 나름의 합리적 목소리도 제기됐다.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 작품인데 언론이 부추겼다”며 우익언론에 화살을 돌리는 목소리도 나왔다.

<야스쿠니>를 둘러싸고 영화관 쪽이 보인 태도는 <천안함 프로젝트>의 경우와 흡사한 면도 있다. 당시 영화 상영 중지를 결정한 영화관 5곳 중 직접적인 압력을 받았다고 밝힌 곳은 1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익의 보복이 무서워 ‘알아서 긴’ 것이다. 한국에선 메가박스 쪽이 괴단체의 협박을 거론했지만 보수단체 중 극장 쪽에 압박 내지 협박을 한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메가박스 쪽이 외압을 구실 삼은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야스쿠니> 사건 이전에도 영화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폭력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넘어서 영화감독이 의혹을 남긴 채 목숨까지 잃은 사건도 있었다. 일본의 유명한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1933~97)의 의문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명배우 출신인 이타미 주조는 1984년 51살의 늦은 나이에 <장례식>으로 감독 데뷔했지만 평단과 관객에게서 많은 지지를 얻었다. 일본아카데미상을 비롯해 그해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이후 배우인 아내를 영화 주인공으로 내세운 <마루타이의 여자> <슈퍼의 여자> 등 ‘여자’ 시리즈와 <대병인> <담포포> 등 ‘흥행’과 ‘호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문제작을 쏟아냈다. 문제는 그가 야쿠자(조직폭력단체)와 우익단체 등 일본 사회의 금기에 도전해 해학과 유머를 섞어 이들의 행태를 조롱했다는 점이다. “야쿠자의 협박은 시민이 용기를 가지고 현명하게 행동하면 물리칠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민보의 여자> 상영 일주일 뒤인 1992년 5월22일 밤. 그는 자택 근처에서 칼을 든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 조직원 5명으로부터 습격을 당해 얼굴과 양팔 등에 전치 3개월의 중상을 입었다. 그 다음해인 1993년 6월 자칭 우익의 남자가 <대병인>이 상영 중인 영화관에 난입해 스크린을 칼로 찢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 폭력단의 80~90%가 산하에 우익단체를 거느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폭력단체의 난동에는 우익단체가 연계돼 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민감한 소재 영화화 움직임 줄어 

우익들의 테러와 위협에도 굴하지 않던 이타미는 결국 1997년 12월20일 도쿄 자택 아래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그에 앞서 일본 사진 전문 주간지 <플래시>에 이타미의 불륜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가 실렸다. 경찰은 “몸을 던져 결백을 증명합니다.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은 이것 외의 방법으로는 입증할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근거로 자살로 결론 지었다. 그러나 유서가 자필로 쓰이지 않은 점이나 평소 이타미가 자살할 성격이 아니라는 점 등을 이유로 그가 타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타살이라는 논픽션 작품도 나왔다.

경위야 어떻든 간에 이타미의 죽음으로 인해 일본 사회에서 민감한 소재를 영화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줄어든 것만은 분명하다.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지 과정에서 드러난 일련의 과정이 일본의 그것을 닮았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파장만큼은 일본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지 않을까?

김도형 <한겨레> 경제국제 에디터·전 도쿄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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