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에서 직접 생선을 잡는 천리마마트 활어회 코너.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웹툰 갈무리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쌉니다 천리마마트> <버프 소녀 오오라>의 김규삼 작가
<쌉니다 천리마마트> <버프 소녀 오오라>의 김규삼 작가
“선량한 갑이 되어 볼 텐가?” 정복동 사장의 이 제안과 함께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막을 내렸다. 재계 0위 대마그룹 이사인 정복동이 회장한테 직언을 했다가 그룹 안의 유배지인 천리마마트 사장으로 좌천당하며 시작되는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그가 그룹 부사장의 횡령 도구였던 천리마마트를 이용해 본사에 복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컨대 그는 천리마마트에서 수익을 낼 계획이 없다. 때문에 10만 알바 양병설을 주장하며 아르바이트생 200명을 고용하고, 거대 수족관을 만들어 회 코너를 둔다. 자본주의적 효율성으로부터 자유로운 그의 경영 방침은 대형마트에 쥐어짜이기 일쑤인 납품업체와 직원들, 그 스스로 또 한명의 노동자인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역설적으로 천리마마트의 부흥을 가져온다. 역설적 상황이 만들어내는 박장대소와 따뜻한 자본주의에 대한 기대가 만들어내는 흐뭇한 미소가 이 작품에는 공존한다.
네이버 웹툰 초기 최대 인기작이었던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에서부터 최근 완결된 <쌉니다 천리마마트>, 현재 연재중인 <버프소녀 오오라>까지 김규삼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현실의 부조리한 부분을 세밀하게 확대하며 풍자적 웃음을 주었다. 가령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에서 이사장과 똑같이 생긴 매점 주인을 보며 과거 상문고를 연상하게 하는 재단 비리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고, <버프소녀 오오라>에서 적당한 직업을 얻지 못해 방황하는 레비아탄 행성인들은 불법이주 노동자에 대한 직설적인 은유다. 김규삼 작가는 전교 1등이지만 입시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불사조나, 지구에 대해 무지하기에 더더욱 상식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오오라의 입을 빌려 우리가 내면화한 규율이나 편견이 실은 근거 없고 기괴한 것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는 현실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함께 다 잘살 수 있는 방법을 한번 모색해 보자고 제안한다.
앞서 인용한 정복동의 말은, 그래서 김규삼이라는 뛰어난 풍자 개그 만화가가 얻은 결론이자 어떤 한계라 볼 수 있다. 모두가 갑을 관계를 비판하지만 또 모두가 갑이 되길 원하는 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선을 실현하는 길은 선량한 갑이 되어 을과 상생하는 것뿐이다. 결국 재단의 해체가 아닌 아이들의 졸업으로 끝났던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처럼 시스템은 그대로다. 게임의 룰을 바꿀 수는 없다. 대신 이 룰 안에서 선한 사람들이 노력한다면 가장 인간적인 결과는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이 김규삼 작가의 결론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일지도, 누군가는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그 만화로서 온갖 황당한 이벤트는 다 벌이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현실적 한계와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 묘한 정직함을, 우선은 응원하련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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