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 감독의 새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문화랑] 영화
자무시 감독 ‘오직 사랑하는…’
공포물 아닌 탐미적 영화
예술의 역사와 본질 성찰
속물적 인간의 사랑 조롱
자무시 감독 ‘오직 사랑하는…’
공포물 아닌 탐미적 영화
예술의 역사와 본질 성찰
속물적 인간의 사랑 조롱
“인간은 참으로 조화의 걸작이요, 이성은 얼마나 고귀하며, 그 능력과 재능은 얼마나 무한한가. 하지만 그런 인간이 내 눈에는 그저 먼지와 다름 아니다.”(셰익스피어 <햄릿> 중)
<천국보다 낯선>(1984), <데드맨>(1995) 등의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마니아 팬을 거느린 짐 자무시 감독이 새롭게 선보이는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뱀파이어, 곧 흡혈귀 이야기다. ‘뱀파이어’라고 하면 흔히 드라큘라와 같은 공포영화를 상상하겠지만, <오직…>은 괴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지독히 탐미주의적인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뱀파이어 커플 아담(톰 히들스턴)과 이브(틸다 스윈턴). 수세기 동안 사랑을 이어온 커플이지만, 이들은 미국 디트로이트와 모로코 탕헤르라는 먼 거리에서 떨어져 지낸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자 골동품 수집이 취미인 아담은 인간 세상에 대한 환멸로 우울증에 빠져 있다. 보다 못한 연인 이브는 그를 위로하기 위해 디트로이트로 날아와 아담과 재회한다. 하지만 이브의 골칫덩어리 여동생 에바(미아 바시코프스카)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아담과 이브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오직…>은 갈등이 고조되다 결국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보통의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영화 속에서 아담과 이브가 어떻게 뱀파이어가 됐는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또 주인공의 운명을 바꿀 정도의 엄청난 사건도 등장하지 않는다. 천천히 돌아가는 레코드판과 침대 위에 널브러진 이브, 소파에 기댄 아담의 모습이 빙글빙글 돌며 교차하는 첫 장면처럼 영화는 느리고 관조적이다.
대신 영화는 이 커플이 역사 속 유명인들과 교류하며 예술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는 삶을 살아왔음을 내비친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과 체스를 두었다거나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의 한 장을 대신 작곡해줬다는 식이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인물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존 허트)는 뱀파이어이자 아담과 이브의 멘토로 나온다.
1900년대 깁슨 기타 같은 골동품을 사 모으고, 거실 벽에 역사 속 유명 작가의 사진들을 전시하듯 걸어놓는가 하면, 뉴턴·피타고라스·갈릴레이 등 과학자들을 영웅시하는 뱀파이어들. 심지어 스컹크를 “오~메피티스”(로마 신화 속 악취의 여신)라고 부르는 시적 섬세함까지 갖췄다.
짐 자무시 감독은 아담과 이브라는 창세기적 이름을 가진 이 고상한 뱀파이어 커플의 모습을 빌려 예술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고 아낌없는 찬사를 쏟아낸다. 그리고 반대로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무지한데다 심지어 이를 파괴하기까지 하는 인간들을 비판하고 조롱한다. “인간 좀비들이 이 세상을 망치는 게 너무 싫”(아담)다며. 미국과 모로코라는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수세기 동안 사랑을 지키고, 서로의 취향과 생활방식을 존중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 또한 단편적이고 속물적이며 소유욕에만 불타는 인간들의 사랑에 던지는 감독의 비판적 은유라 할 수 있다.
자무시 감독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백년을 살아온 영화 속 뱀파이어들의 모습에서 그 긴 시간을 아우르는 사랑 이야기와 이들의 관점으로 본 인간의 역사, 새로운 문화와 경험에 대한 열린 자세를 얘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오직…>은 대중영화라기보단 예술영화에 가깝다. 할리우드식 스펙터클함에 길든 관객이라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 출연한 틸다 스윈턴과 존 허트의 새로운 연기 변신을 볼 수 있다는 점, <토르> 홍보차 방한했던 톰 히들스턴의 매력을 다시 엿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반가운 영화가 될 듯하다.
또 음악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겐 전통 아랍음악과 일렉트로닉을 접목시킨 레바논 뮤지션 야스민 함단, 컨트리록 뮤지션 찰리 페더스, 미국 정통 블루스 가수 데니스 라살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영화를 보는 내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울 듯하다. 9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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